⑤ 운명의 갈림길
귀국 1년만에 재무장관 임명
‘14년 관료의 길’ 접어들어
대통령 “이제 맛 좀 봐!” 농담
1년간의 스탠퍼드대 생활을 마치고 1968년 7월 귀국길에 올랐다. 한데 비행기 안에서 어쩐지 또다시 정부 일에 말려들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애써 앞으로의 연구계획으로 생각을 돌리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해 8월, 나는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는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1년이 지나 1969년 10월 어느 날, 나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짓는 기초공사를 감독하고 있었다. 그동안 출판사에서 받아 모은 자금을 밑천 삼아 330m²(100평)의 대지를 구입한 후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공사는 직영으로 하고 때때로 현장 감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승윤 교수가 지프를 타고 달려왔다. 청와대에서 급히 들어오라는 전갈이 대학으로 와서 달려왔는데 곧 개각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에 들어오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물었더니 이 교수는 “할 수 없지요. 가셔야지요”라고 대답했다. 지프를 타고 공중전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부총리는 나를 찾느라고 무척 애가 탔던 모양이었다. 재무장관으로 임명됐으니 빨리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명령조 말투였다.
“운명이다, 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며 납덩이같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공사판에서 흙이 묻은 구두를 신은 채 청와대 접견실로 들어갔는데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축하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하지만 이런 인사는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와 신임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주고 나서 정렬이 흐트러질 때, 박 대통령은 나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주위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딴에는 정부시책에 언제나 온건하고 건설적인 비판을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말씀이라고 느껴졌다.
어쨌든 그 후 나는 14년 동안 정부 관료의 쓴맛 단맛을 톡톡히 본 셈이다.
임명장을 받고 청와대를 나와 그 길로 재무부를 찾아갔다. 내가 오는 줄도 모르니까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다. 장관실을 찾아가니 차관과 간부급 몇 사람이 모여 앉아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문전에 나타난 나를 보고 황급히 일어나 인사했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그때, 대학교수가 장관으로 왔으니 몇 달 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점치고 있었다고 한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러기에 취임사에서 장관은 과객에 불과하니 공무원들이 잘해야 경제가 잘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과객 치고는 체류가 긴 과객이 되고 말았다. 재무부에서 4년 11개월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찍이 학자의 길을 선망했던 나로서는 운명의 장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