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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실업자 510만명…‘고학력 백수’ 급증

입력 | 2009-04-06 22:11:00


놈 엘로드 씨(36)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뉴요커였다. 직장에 다니면서 주경야독으로 2005년 포드햄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뒤 온라인 마케팅 회사에서 일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정리해고 당한 이후 현재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MBA를 끝낼 때 가졌던 장밋빛 꿈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나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한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엘로드 씨 뿐만이 아니다. 뉴욕에서 지난해 실업 수당을 신청한 대졸자의 수는 3만5000명. 미국 실업문제가 예상보다 악화되면서 그나마 취업 사정이 괜찮았던 고학력자들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에서 3월 한 달간 없어진 일자리 수는 66만3000개.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실업자 수는 510만 명에 이른다. 전체 실업률도 8.5%까지 올라가 1983년 이후 최악으로 치솟았다. 구직을 단념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질 실업률은 15.6%까지 오른다는 추산도 나온다. 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금 실업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겪은 12번 경기불황 중에서 4번째로 심각하다. 실업자 증가 속도나 지속 시기 등이 60년대 이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나빠졌다.

미 정부는 공공분야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지만, 세수 감소와 예산 감축 등의 문제에 직면한 지방정부들은 오히려 감원을 진행 중이다. 3월 정부 관련 일자리 수는 5000개 줄어들었다.

이렇다 보니 일반 대졸자는 물론 변호사나 회계사, 사진사, 디자이너 같은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도 속속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월가(街)를 중심으로 엘리트가 몰려드는 뉴욕은 이를 잘 보여주는 축소판"이라고 보도했다. 이 지역에서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 중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 수는 전년 대비 무려 135% 증가했다.

맨해튼 재정정책연구소(FPI) 제임스 패럿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잘 교육받은 고학력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은 과거 불황 때에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학력자들의 실업은 학력이 낮거나 단순 노동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고용사정 악화로 다시 이어진다는 것도 문제다.

뉴욕은 전반적인 실업 증가추세가 내년 초까지, 특히 금융 분야는 2011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주들이 보수가 높은 고학력자들의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부는 화이트칼라들의 구직을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이들에게 "자영업을 시도해 보라"거나 "직종을 바꾸라"는 조언도 적극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개리 로스 씨(36)는 취업 대신 창업계획을 세운 실업자다. 지난달 대형 로펌인 '시들리 오스틴'에서 해고된 90명의 변호사 중 한 명. 로스 씨는 "쉽지는 않겠지만 아직 패닉 상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