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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언젠간 나도 연아 언니처럼…”

입력 | 2009-04-07 02:54:00


넘어지고… 멍들고… 그래도 ‘퀸’을 닮고 싶어요

“언젠간 나도 연아 언니처럼…” 피겨 키드들 아이스링크서 꿈 담금질

3월 31일 오후 5시. 경기 과천시민회관 지하 2층 아이스링크는 봄날인 바깥과 달리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착-착! 칙칙” 얼음 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7세 때 처음 섰던 얼음판 위엔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김연아 키드’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돌고, 달리는 사이 간간이 코치의 호된 기합소리가 들렸다. 꼬마 선수들은 엉덩방아를 찧어도 발딱 일어났다. 링크 바깥에는 낮은 기온 탓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자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로 북적였다. 캠코더로 아이가 연습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부모도 있었다.

강습을 마치고 나오는 박정원 양(8·서울 인헌초 2)의 코 밑에 살짝 얼어붙은 콧물이 보였다. 박 양은 “김연아 언니가 멋지고 예뻐서 엄마에게 졸라 작년 11월부터 피겨를 배웠는데 정말 재밌어요”라고 말했다. 초급반 조서영 양(8·서울 교대부속초 2)은 “우리나라 1등이었던 연아 언니가 세계 최고가 돼서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초급반 7명의 어린이에게 “피겨를 배우면서 뭐가 가장 어렵냐”고 물었더니 “코치선생님한테 혼날 때요”, “타고나면 허리하고 발뒤꿈치가 아파요”, “넘어져서 무릎 다쳤을 때요”라고 말했다. 한 어린이는 바지를 올려 무릎에 퍼런 멍을 보여줬다.

10년 넘게 과천 아이스링크에서 피겨를 가르친 변성진 강사(39·여)는 “김연아 열풍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한 강습의 정원이 15명인데 대기자가 30명이 넘는다. 수강하는 학생들이 좀처럼 그만두지 않기 때문에 순서가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인원이 채워지지 않아 강습이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 변 씨는 “왼손과 오른손에 다른 장갑을 낀 꼬마 김연아에게 ‘장갑이 짝짝이네’라며 농담을 건넸는데 연아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연습에 집중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김연아는 스케이트 실력도 뛰어났지만 냉철하고, 정신력이 강한 아이였다”며 “피겨의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피겨 꿈나무의 소질, 정신, 훌륭한 지도자가 조화를 이루면 더 많은 김연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중급반과 주니어 선수들이 아이스링크에 모였다. 얼음 위를 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고 회전과 점프 기술을 연마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링크 밖 복도와 계단에서는 지상훈련이 한창이었다. 김연아가 나오는 모 우유 CF에서 본 훈련 동작이 생각났다. 2단 뛰기 줄넘기는 기본이 1000개, 3단 뛰기는 300번씩 했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두 다리를 모아 한 번에 네 계단씩 뛰어올랐다. 지하 3층부터 지상 2층까지 쉬지 않았다. ‘한발 뛰기’로 30여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춘 어린이에게 “쉬면 한 세트씩 더 한다!”는 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최철민 코치(25)는 “하루 3시간씩 링크에서 피겨 기술을 배우고 밖에서 1, 2시간 기초훈련을 한다”며 “빙판 위에서의 부상을 줄이고 점프력과 체력을 기르기 위해 지상훈련은 필수”라고 말했다.

5학년 때 피겨를 시작한 곽정은 양(14·서울 세화여중 2)은 일주일에 네 번 아이스링크를 찾아 4시간씩 연습한다. 2회전 점프를 연습하다 수십 번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곽 양은 “엉덩이에 두툼한 패드(엉덩이 보호대)가 없었다면 꼬리뼈가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 양은 요즘 부쩍 키가 자라 고민이다. 여자 피겨 선수는 몸이 작고 가벼워야 동작이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 김연아는 그에게 ‘닮고 싶은 선배’다.

어머니 고영미 씨(46·서울 서초구 반포동)는 곽 양이 연습하는 내내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몇 차례 딸의 부상과 수술을 경험한 고 씨는 “언제 다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해서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다”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하는 딸도, 지원해야 하는 부모도 힘들지만 피겨를 정말 좋아해서 말릴 수 없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