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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열린 문화, 국경을 허문다]

입력 | 2009-04-08 02:58:00

지난달 27일 미국 뉴저지 주의 토머스제퍼슨초등학교에서 열린 ‘인터내셔널데이’ 행사. 학부모들의 출신 국가에 따라 부스를 만들어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자리다. 우리의 한복과 전통문화를 선보인 한국 부스 모습. 뉴저지=신치영 기자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서 열리는 인도 디왈리 축제. 런던 시는 세계 각국의 지역 축제를 수시로 마련해 다인종 간의 화합과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계의 심장’ 국제도시들의 원동력

어릴 때부터 ‘인터내셔널’ 체득… ‘다문화 용광로’가 경쟁력

多인종, 美 정치-경제의 핵
佛 국민가수, 이탈리아 출신
개방-혼종문화, 상하이의 힘
“피부색-국적 따지지 않고 자국문화 편입 주역으로”

인도 불상, 중국 그림, 남미 악기, 러시아 인형, 네팔의 전통의상…. 세계 여러 나라의 풍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 미국 뉴욕의 벼룩시장이다.

지난달 28일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열린 한 벼룩시장을 찾았다. 각기 다른 나라의 색채를 띤 물건들로 200m 남짓한 맨해튼 거리는 다채로운 풍물거리가 됐다. 네팔인 람 씨(37)가 네팔 전통 모자를 건넸다. 모자를 받은 사람은 노르스름한 피부색의 아시아계 뉴요커다. 저마다 국적이 다른 물건, 백인 흑인 히스패닉에서 아시아, 중동 출신까지 다양한 얼굴색의 상인과 손님들. 그야말로 각양각색인 벼룩시장은 주말이면 맨해튼 곳곳에서 연출되는 일상의 풍경이다.

○ 초대강국 이끄는 다문화의 힘

미국 사회는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이 전체 인구의 33.7%나 되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다. 인종 간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미국인의 노력은 초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달 27일 뉴저지 주 버겐카운티 노스베일타운 내 토머스제퍼슨 초등학교는 1학년을 대상으로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를 열었다. 이날 10개 국가 출신의 학부모들은 자국 문화와 풍습을 알리는 부스를 설치했고, 학생들은 부스를 돌며 친구들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를 배웠다. 한국 부스에서는 한복과 전통 예절이 소개됐다. 학부모들은 “매년 행사가 열리는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입을 모았다.

이것은 미국의 힘이다. 다양한 인종과 다문화의 힘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 등은 물론이고 소프트 파워에까지 발휘된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미국 소수인종의 영향력 확대’ 보고서에 따르면 소수 인종이 미국 경제의 고성장과 저물가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구 증가를 주도한 이민 노동력이 미국의 평균임금을 3% 낮춘 데 반해 국내총생산(GDP)은 확대했다. 특히 이공계에서는 박사학위 근로자의 41%를 외국인이 차지할 정도로 외국인이 생산성에 기여하고 있다.

○ 다문화의 문화·경제 파워

‘통브 라 네주(Tombe la neige·눈이 내리네)∼’로 시작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샹송. 이 노래를 부른 살바토레 아다모는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이다. 프랑스 고유의 대중문화인 샹송을 부른 가수 중에는 이민자 출신이 적지 않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에도 유난히 유색인이 많다. 2006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국가대표팀의 엔트리 23명 중 본토인은 단 6명뿐이었다. 나머지 선수는 이민 2세이거나 유색인이었다. 이처럼 샹송과 축구는 프랑스 이민사회의 상징이다.

프랑스는 오랜 이민사에 걸쳐 여러 인종을 흡수하면서 각 민족의 문화 역시 프랑스 문화라는 용광로 안에 녹여냈다. 문화평론가 김휘린 씨는 “프랑스는 피부색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가치만 있다면 자국 문화로 편입시켜 상품화하는 데 탁월하다”고 평했다. 실제로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피카소는 프랑스 화가로 더 유명하고,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프랑스의 지성’으로 포장됐다. 헤밍웨이가 당대 문인들과 드나들었던 파리 시내의 서점과 카페는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최근 떠오르는 국제도시 중국의 상하이는 동아시아 경제 허브로 무섭게 부상하고 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학과 교수는 “상하이의 원동력은 개방화 혼종문화”라고 진단했다. 식민 역사의 산물로 각국 출신이 뒤섞여 사는 데다 태생적으로 개방적인 특성이 혼종 문화를 낳았다.

그 상징적인 공간은 신톈디(新天地). 길게 늘어선 붉은 벽돌 건물은 상하이의 전통 양식을 그대로 살렸지만 내부는 현대적이다. 전통 찻집과 공예품점, 독일 맥주바와 스타벅스 커피매장이 혼재된 공간을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이 채우고 있다.

○ 국제도시의 경쟁력 주목해야

우리나라에는 현재 전체 인구의 2%에 이르는 10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 성적은 하향세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AT커니가 미국의 정치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함께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지수에 따르면 2007년 현재 한국의 세계화 수준은 72개국 중 35위. 2003년 28위보다 7계단이나 떨어졌다. AT커니코리아의 장명훈 컨설턴트는 “무역 비중, 해외직접투자 비중, 여행수지 등 12가지 변수를 4개 영역으로 나눠 평가하는데, 한국은 우위를 보였던 통신 인프라에서 다른 나라와의 격차가 줄고 해외직접투자 등은 감소해 글로벌 점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국제도시의 현주소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AT커니의 ‘2008 글로벌 도시 지수’에서 상하이는 평가대상 60개 도시 중 20위에 불과하지만, 비즈니스 활동 부문에서는 8위를 차지했다. 실리를 중시하는 상하이의 기질이 개방적 문화공간을 만들고, 그런 문화가 외국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톨레랑스(관용)’라는 화두를 던졌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는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프랑스에서도 이민 2, 3세들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우리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온몸으로 차별을 느끼며 자라고 있는데 이들이 청년이 될 경우 우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며 다문화 사회를 위한 준비를 강조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