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프로농구 KCC 조우현(33)은 2월 1일 부산 원정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임신 9개월의 아내가 사산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예정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고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던 때였다. 19개월 된 큰딸에 이어 곧 둘째를 본다는 부푼 기대감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변했다.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마냥 울 수만은 없었다. 더 큰 상처를 입은 아내를 위로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내가 코트에서 부진한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다 내 탓이죠.”
조우현은 중앙대 시절 세계 올스타에 뽑힐 만큼 국내 최고 슈터였다. 1999년 프로에 뛰어든 뒤 동양, LG 등으로 소속 팀을 옮기며 오랜 슬럼프에 허덕였다. 올 시즌 전자랜드에서 단 1초도 뛰지 못하다 지난해 12월 서장훈과 트레이드되면서 KCC로 이적했으나 여전히 출장 기회는 적었다. 연봉 2억5000만 원을 받고 있는 탓에 ‘먹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아기를 멀리 떠나보낸 조우현은 달라졌다. 평소 차가운 이미지에 내성적이던 그는 자신을 어려워하던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벤치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처하며 뛰는 선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10초든 1분이든 코트에 서면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투지를 보였다. “아내가 늘 TV로 경기를 보거든요.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해야 힘을 낼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크게 소리를 지르곤 하죠.”
조우현의 꿋꿋한 모습은 KCC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시즌 중반 8연패의 위기를 극복한 KCC는 포스트시즌에 올라 전자랜드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4강에 진출했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까지 생각했던 조우현. 이젠 새롭게 맞은 농구 인생이 소중하기만 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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