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백도명 교수
"석면 잠복기 길어질수록 발병 확률 높아져 아이에게 더 위험"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백도명 교수 인터뷰
"석면으로 인한 질환은 잠복기가 평균 25~30년 정도입니다. 어린 나이에 노출될수록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석면 피해 연구에 몰두해온 전문가인 백도명 교수(서울대 환경보건학과)는 "석면이 위험한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질환 발병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라면서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그만큼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8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에서 '석면 베이비파우더 집단소송 예비모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석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연 이후 백 교수를 만났다.
석면에 노출되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은 중피종. 폐를 둘러싼 흉막, 위나 간 등을 보호하는 복막, 심장을 싸고 있는 심막 등의 표면을 덮고 있는 중피에서 발생하는 종양이다. 이중 중피종 암은 몸에 들어온 석면 섬유가 폐조직을 뚫고 늑막이나 복막까지 들어가 일으키는 암으로 한 번 발병하면 1년 안에 대부분 사망할 정도로 악성이다.
석면으로 중피종이 생길 가능성은 100만 명 중에 10명 정도로 추정된다. 아이에게 석면 파우더를 발라 주었다고 해도 발병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문제는 잠복기가 길다는 것. 더구나 흡연 등 다른 위험 요인에 노출되는 시간도 어른보다 길 수 밖에 없다.
백 교수는 "석면에 의한 중피종은 석면 노출 빈도가 많아 발병한다기보다 잠복기가 길수록 발병 가능성이 높아져 생기는 것"이라며 "1년 지나면 2배가 아니라 100배, 1000배 발병 확률이 늘어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욱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당장 발병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해도 석면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백 교수의 지적이다. 외국에서는 고무타이어 제작 종사자, 수술용 장갑을 낀 외과의사, 화장을 하는 연극배우 등에게서도 폐암, 중피종암이 보고 된 바 있다.
백 교수는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1992년 한국에 돌아왔다. 당시 서울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산업안전공단 산업의학연구실장을 겸임한 것이 석면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이다. 그는 영세 사업장 발암물질 실태를 조사하며 석면 피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백교수는 석면의 순환 가정을 '채광 → 제조 → 가공 → 사용 → 관리 → 폐기' 6단계로 구분했다. 광산에서 활석을 채광하는 광부부터 폐자재를 운반하는 인부까지 모두 석면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삼성 본관의 석면 발생 문제를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사 현장에 석면이 날리는 것도 문제지만 석면 자재를 실은 차량들이 도로를 활보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석면이 가장 위험한 단계는 가공 이후인 사용, 관리, 폐기 단계입니다. 광산에서 채광할 때보다 저농도 석면이지만 노출되는 사람이 비교도 안 되게 많기 때문입니다. 공사장 인부들이나 베이비파우더 사용자처럼 말이죠."
석면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계속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공사장 인부, 광부처럼 특정 직업이나 특정 계층에 한정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이나 베이비파우더, 화장품처럼 이제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경제, 정치적으로 압축 성장을 해 왔으나 사회는 압축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안전 보건 문제에 있어서는 경험을 돌아보고 교훈을 얻는 단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들이 없었죠. 이번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을 통해 안전 보건 문제에 대한 성찰이 축적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