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에게 핸드백은 손에 드는 어떤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에르메스 켈리백을 들면 자신이 마치 그레이스 켈리가 된 듯, 재키 백을 들고 집 밖에 나설 때면 큼직한 선글라스도 머리에 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여성에게 핸드백은 신분의 상징이자 사치를 증명하는 일종의 ‘영수증’과도 같습니다.
지난해 한 영국 시장조사기관에서는 여성들의 핸드백에 대한 끊임없는 소유욕을 보여주는 눈길 끄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20∼60대의 영국 여성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이 평생 드는 핸드백 수는 평균 111개라고 합니다. 한창 패션에 신경을 쓸 나이인 30세 여성들은 평균 21개의 가방을 갖는다는군요.
111개의 핸드백을 사기 위해 여성들이 지출하는 돈만도 8000파운드(약 1620만 원)입니다. 백 하나를 사는 데 지불하는 평균 금액은 76파운드(약 15만 원)이라는군요. 그렇다면 남성들은 평생 마시는 술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요?
백의 가격도 나이에 비례합니다. 20대 때 가장 비싼 백의 가격은 185파운드(약 37만 원)이지만 30대가 되서는 380파운드(약 76만 원)란 거금을 거침없이 지불합니다. 하지만 여성에게 백은 단순 사치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8명 가운데 1명은 구입한 백 가운데 50년 넘게 갖고 있는 백이 있고 대를 이어 물려줄 계획이라네요.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이처럼 많은 가방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고 또 사는 것일까요. 전체 응답자 가운데 70%의 여성은 “갖고 있는 옷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옷의 유행처럼 여성들이 새 핸드백을 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개월이 채 안 됩니다.
물론 영국 조사결과이긴 하지만 한국도 크게 상황이 다르진 않습니다. 불황이라지만 백화점 핸드백 매장은 여전히 고객들로 붐빕니다.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매장이 바로 핸드백 편집매장입니다.
이곳에는 랑방, 지방시, 끌로에, 주디스 리버, 마르니 등 유명 브랜드 제품들이 백화점 입구에 들어선 여심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백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지만 신제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고 합니다.
혹시 쇼윈도에 내걸린 탐스러운 백에 눈길을 못 떼던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핀잔을 주신 적은 없으신지요. 남자들에게는 여자들의 백에 대한 열정이 불가사의 같겠지만 정작 여자들은 이 시대 잇백(It bag·최신 유행 명품 가방) 열풍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답니다.
정효진 산업부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