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첫선 …소나 타는 차?
스텔라 차체에 日엔진 장착
○2004년 美언론 찬사
세계가 깜짝 놀란 품질 향상
○2009년 진화는 계속된다
올해 하반기 6세대 YF 출시
‘Man bites dog(사람이 개를 물다).’
흔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언론계에선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로 기사 가치 판단에 관한 설명을 할 때 자주 인용된다.
2004년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이 표현을 사용했다. 단기간에 이뤄낸 엄청난 품질 향상 성과를 극찬하면서다. 1985년 10월 ‘쏘나타’라는 이름의 차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되던 해였다. 올해 1월 누적 판매 450만 대를 넘어선 쏘나타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인기 비결을 살펴본다.
○ 시작은 미미했으나…
1985년 첫선을 보인 ‘소나타’는 기존 ‘스텔라’ 차체에 일본 미쓰비시가 제작한 시리우스 엔진을 장착했다. 하지만 애초 내수(內需)시장을 겨냥해 스텔라를 개조한 차라는 점에서 아직 본격적인 의미의 ‘쏘나타’와는 차이가 있었다. 성능과 디자인이 떨어져 일각에선 ‘소나 타는 차’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84년 ‘Y2’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에 착수한 수출 전략형 중형차가 사실상 쏘나타의 원조로 불린다.
4년여에 걸친 노력 끝에 1988년 마침내 ‘Y2’, 즉 ‘쏘나타’가 탄생했다. 이름은 미국 현지 딜러들의 의견을 반영해 ‘SONATA’의 영문 철자는 그대로 사용하고, 한글 표기만 ‘쏘나타’로 바꿨다. 하지만 차의 성능과 디자인은 기존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전 모델과 전혀 다른 차였지만 새로운 차가 나올 때마다 새 이름을 붙일 경우 이전 모델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차에 이전 모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 한국 자동차 혁신의 대명사로
국내 자동차 기술의 발전은 쏘나타의 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을 따라잡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현대차는 미국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놀림감이었다. 누군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고 할 때 ‘현대차를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현대차의 쏘나타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국산 중형차로는 처음 앞바퀴 굴림 방식(전륜구동)을 채택한 초기 쏘나타는 당시 그랜저보다 넓은 실내 공간으로 어필했다. 같은 가격이면 덩치가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춘 것이다. 부드러운 승차감은 딱딱한 유럽형 서스펜션을 주로 접하던 국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1980년대 말 극심한 노사분규는 생산 차질과 품질 저하로 이어졌고, 미국 경기 침체까지 겹친 때문이었다.
1993년에 나온 ‘쏘나타Ⅱ’는 국산 중형차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 중형차’라는 애칭이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은 쏘나타Ⅱ의 디자인을 최고로 평가할 정도로 쏘나타 시리즈 중 명작으로 꼽힌다.
1998년에 나온 4세대 모델 ‘EF쏘나타’는 현대차가 기술 독립을 선언한 차였다. 독자 개발한 고성능 델타V6 엔진과 신경제어망 자동변속기, 자체 설계로 승차감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서스펜션 등이 장착돼 19개월 연속 국내 전 차종 중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쏘나타가 미국 등에서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찬사를 받은 것도 EF쏘나타의 부분 변경 모델인 ‘뉴 EF쏘나타’(2001년) 때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04년 곧바로 5세대 ‘NF쏘나타’를 내놓았다. 또다시 국내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엔진 개발을 독려했고, 46개월에 걸친 신차 개발에 2900억 원이 투입됐다. 1000여 명의 연구진은 4년 가까이 휴일도 잊은 채 연구에 몰두해야 했고, 엔진 실험을 하면서 두 차례나 화재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부분 변경 모델인 ‘쏘나타 트랜스폼’이 나온 지 채 2년이 안 됐지만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6세대 ‘YF쏘나타’를 내놓을 예정이다.
김준규 자동차공업협회 산업조사팀 부장은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술이 집약된 차”라며 “현대차가 기술 진보를 이루면서 가장 먼저 쏘나타에 첨단 기술을 적용해 혁신을 거듭한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 일관된 브랜드 관리
쏘나타는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관심과 기대를 증폭시키며 다양한 얘깃거리를 낳았다. 1990년대 말 국내에선 한때 쏘나타의 ‘S’를 갖고 있으면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돌았고, 남성 심벌을 닮은 헤드라이트가 화제가 됐던 쏘나타Ⅲ의 ‘Ⅲ’은 대학수학능력시험 300점을 보장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입시철만 되면 쏘나타 엠블럼을 교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쏘나타는 새로운 모델마다 늘 철저하게 소비자의 취향 변화에 맞춘 기술과 디자인을 적용해 쏘나타만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 품질을 바탕으로 20년 넘게 소비자들에게 ‘성공한 중산층의 차’ ‘오너형 고급차’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일관된 마케팅을 전개한 것이다. 최근 그 자리를 ‘그랜저’에 넘겨줬다는 시각도 있지만 여전히 쏘나타는 국내외에서 ‘성공한 중산층의 중형차’로 남아 있다. 단순히 품질 향상뿐 아니라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를 통해 쏘나타 브랜드의 자산 가치를 쌓아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선우명호 한양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도요타 하면 캠리, 혼다는 어코드를 떠올리듯 쏘나타는 현대차의 상징이자 중산층의 대표적인 중형차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며 “그 같은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끝없는 품질 혁신과 함께 체계적인 브랜드 관리가 뒷받침됐다”고 분석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정몽구회장 “엔진개발자에 레드 카펫 깔아줘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2000년 12월 차가운 날씨에 경기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종합연구소를 찾았다. 지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새 건물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정 회장은 갑자기 안내하던 당시 이현순 파워트레인연구소장(현 현대차 부회장)에게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빨간 카펫이라도 깔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영화제에서 주연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고 입장하듯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에겐 주연배우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정 회장의 지시는 이튿날 곧바로 이행됐다. 세월이 지나 카펫은 최고급 타일로 바뀌긴 했지만 이 일화는 엔진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이에 대한 정 회장의 관심과 애정을 잘 드러내는 사례로 꼽힌다.
현대차가 지난달 발표한 신형 에쿠스에 탑재된 ‘V8타우’ 엔진은 세계 10대 엔진 중 하나로 선정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1985년 나온 쏘나타에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엔진을 탑재할 때까지는 1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998년 4세대 모델인 EF쏘나타가 나오기 전까지는 일본 미쓰비시의 시리우스 엔진에 의존해야 했다. EF쏘나타에 탑재된 ‘델타V6’ 엔진은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첫 V6 엔진이자 한국의 첫 알루미늄 합금 블록 엔진이었다.
2004년에 나온 NF쏘나타에 탑재된 세타 엔진은 현대차의 엔진 기술력을 국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초경량 알루미늄을 사용한 이 엔진은 연료소비효율과 출력을 높이고 엔진 소음은 크게 줄였다. 이 때문에 현대차 지분 10%를 갖고 있던 다임러크라이슬러는 2004년 이 지분을 매각하고도 세타 엔진은 계속 공유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엔진 기술을 빌려 썼던 미쓰비시에 세타 엔진 기술을 이전해주기로 하고 총 740억 원을 받았다.
올해 하반기(7∼12월)에 선보일 6세대 모델 ‘YF쏘나타’에 들어가는 엔진은 ‘세타2’다. 기존 세타 엔진을 대폭 개선한 것이다. 현대차는 세타2 이후에 장착될 ‘GDI엔진(가솔린을 직접 엔진 연소실에 분사하는 엔진)’도 개발 중이다. 같은 연료로 기존 엔진에 비해 출력을 30%가량 높일 수 있는 GDI엔진은 유럽과 일본의 최고급 세단에 주로 사용되는 엔진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남양연구소에 들르면 엔진을 개발하는 파워트레인 건물을 제일 먼저 찾는다”며 “그때마다 연구 환경에 지장을 주는 문제를 찾아내 곧바로 개선해 준다”고 말했다. 쏘나타의 식지 않는 인기 뒤에는 현대차의 끊임없는 독자 엔진 개발 노력이 숨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