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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영균]국민 정서와 ‘눈치꾼 장관’

입력 | 2009-04-13 02:57:00


캐나다 정부가 자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지 않는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캐나다산 쇠고기가 미국산과 똑같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BSE) 위험통제국 지위를 얻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유다. 우리 정부도 캐나다산 쇠고기의 과학적 안전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시간을 끌다 제소를 당한 것이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국민 정서와 소비자 설득 문제가 만만치 않아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요컨대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촛불 시위를 생각하면 장 장관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처럼 의도적으로 왜곡된 주장이나 목소리 큰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며 정책 결정을 번번이 미루는 것도 정도는 아니다. 같은 지위인데도 미국산만 수입하고 캐나다산을 막으면 WTO에서도 패소할 것이다. 장 장관은 캐나다산 쇠고기가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점검하고, 자신이 서면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잘못된 정서는 바뀌도록 해야 한다.

▷요즘 정부 부처들이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여론이나 이익집단의 반응부터 걱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책 방향을 먼저 언론에 흘려 반응을 떠보고 여론이 좋으면 하고 시끄러울 소지가 있다 싶으면 접는 식이다. ‘촛불’에 소신이 타버린 듯하다. 일반 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나, 의료관광 유치를 위한 영리병원 허용 문제도 이익집단의 반대로 진척이 없다.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에 침묵하는 다수의 이익은 날아가 버린다.

▷‘국민적 공감대’는 정책 결정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다. 찬성하는 국민이 많은 정책이라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가 주요 정책에서 국민 여론을 선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부고속도로나 인천국제공항도 반대 여론이 높은 가운데 추진됐다. 이익집단의 의견만 들었더라면 금융실명제 실시도, 청계천 복원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정책을 여론조사 결과대로 결정한다면 많은 장관이 왜 필요한가. 장관들이 자리보전에 신경 쓴 나머지 ‘눈치 10단’으로 사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초심(初心)과도 거리가 멀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