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시동 꺼졌다 켜졌다
기름 덜먹고 매연은 줄이고
‘정지하면 저절로 시동이 꺼지고 출발하면 켜질 수는 없을까.’
운전자라면 정차 중에 들어가는 기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시동을 끄고 켜기가 귀찮을 뿐만 아니라 부품 손상이나 사고의 우려 때문에 신호대기 중 시동을 끄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이런 고민을 해결한 자동차가 등장했다. 기아자동차가 슬로바키아에서 생산하는 ‘씨드 ISG’(사진) 모델이다. ISG란 ‘Idel Stop & Go’의 약자로 시동을 자동으로 끄고 켜준다는 뜻이다.
씨드는 아직 국내 판매가 되지 않고 현지에서 생산돼 유럽으로 수출되는 수동변속기 모델에 국한된다. 그러나 현대·기아자동차는 자동변속기용 ISG 시스템을 개발해 거의 완성 단계에 있기 때문에 머지않아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들에도 기본적으로 ISG 시스템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ISG 모델의 연료소비효율 개선 효과는 교통체증이 심한 도심 주행일수록 높은데 일반 자동차보다 최소 5%에서 최대 20%까지 연료가 적게 든다고 기아차 측은 밝혔다.
실제로 씨드 ISG를 몰고 서울 도심을 운전해봤다. 정지신호에 걸려서 차를 멈춘 뒤 클러치를 밟아 기어를 중립(N)으로 빼면 스르륵 시동이 꺼졌다. 계기반에는 ‘AUTO STOP’이라는 표시등이 켜졌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주행하기 위해 클러치를 밟아 기어를 넣는 사이 부드럽게 시동이 다시 걸린다. 시동이 걸리는 속도가 1초 이내로 빠르고, 생각보다 소음 및 진동이 적어 시동이 꺼지고 켜지는 과정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동아일보 석동빈 기자
회사 측은 “대용량 배터리와 강화된 시동·모터 등을 넣어 잦은 반복 시동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여러 가지 센서도 추가돼서 배터리의 전압과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진공압력이 떨어지거나 실내 냉난방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정차 중에도 시동이 다시 걸린다.
ISG 시스템 덕분에 배기량 1.6L인 씨드는 서울 시내 주행에서 L당 13km 안팎의 연비를 보였다. 동급 일반 모델에 비해 10% 정도 연료 소모가 적은 셈이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80∼100km로 부드럽게 달리자 연비는 L당 17km까지 높아졌다.
ISG 시스템은 하이브리드 시스템보다는 연비절감 효과가 적지만 값비싼 모터와 대용량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아 제조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따라서 자동차 가격 상승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새로운 기술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산화탄소(CO₂) 배출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날로 엄격해지는 각국의 환경기준을 맞추는 데도 ‘효자노릇’을 할 수 있다. 앞으로 판매될 국내 모델에도 ISG 시스템이 빨리 적용됐으면 한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