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순간… 밀려오는 ‘숫자예언’의 공포
‘재난 블록버스터’를 내세운 영화 ‘노잉(Knowing·16일 개봉)’은 공포 영화처럼 시작해 심리 스릴러와 액션을 오가다 공상과학(SF) 영화로 끝나는 묘한 작품이다.
1959년 미국 한 초등학교의 개교 기념식. 타임캡슐에 담기 위해 뭔가를 만드는 아이들 중에 여학생 루시나(라라 로빈슨)가 신들린 듯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로부터 50년 뒤, 천체 물리학자이자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인 존 코슬러(니컬러스 케이지)는 아들 캘럽(챈들러 캔터베리)이 학교 타임캡슐에서 가져온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편지에는 불규칙적으로 써내려간 숫자가 빼곡하다. 존은 그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일어났던 대재난의 날짜, 사망자 수, 위치와 일치한다는 걸 깨닫는다.
‘작고 푸른 행성인 지구의 현상들은 불규칙한 우연의 배열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이 의도됐고 순서도 정해져 있는 것일까.’ 존이 수업시간 학생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 영화가 출발하는 전제이다. 아내를 사고로 잃고 모든 건 우연일 뿐이라는 무작위론자 존은 종이 속 숫자를 짜 맞추며 결정론을 믿게 되는데 영화를 보는 관객도 비슷한 과정을 따라간다. 그만큼 영화는 한 소녀가 신들린 듯 써내려간 숫자에 의해 50년간 지구의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가정을 밀도 있게 끌고 나간다.
다만 여기서 관객이 품게 되는 의문이 하나 있다. 운명론처럼 잘 쌓아 놓은 블록을 어떻게 허물지에 대한 것이다. 존은 재난 발생일을 가리키는 숫자 마지막에 적힌 ‘EE’라는 글자가 ‘나머지 모든 사람(Everyone else)’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예고된 종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긴장감 있게 늘어놓은 가정을 공상과학으로 봉합하는 결론에서는 ‘결국 이거였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허무하다.
‘아이, 로봇’을 만들었던 알렉스 프로야스가 감독 각본 제작을 맡은 이 영화는 ‘장르 백화점’처럼 관객들의 눈과 귀를 바쁘게 한다. 비행기가 주인공 옆에서 추락하거나 맨해튼 지하철이 탈선하며 대형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은 차별화된 CG(Computer Graphic)로 현실감을 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생생한 건 사고 장면이 아니라 그 속에 깔린 이들의 아비규환과 이런 사고가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공포’다. 그러기에 영화는 눈과 귀보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12세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