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안정시키려 조성하는 외국환평형기금
자금조달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죠
[?]신문에서 정부가 지난주 30억 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성공했다’니 좋은 일인 것 같기는 한데 외평채가 뭔지 몰라서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자국 화폐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입니다. 환율이 급격하게 변하면 기업들은 중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세울 수 없고, 외국인투자가들은 불안한 마음에 투자를 망설이게 되죠. 특히 우리나라처럼 규모가 작고 개방된 나라는 투기자금이 조금만 들어와도 환율이 요동칠 수 있어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외국환평형기금은 정부가 환율을 안정시키고 투기자금이 한꺼번에 유입, 유출되는 데 따른 악영향을 막기 위해 조성하는 자금입니다. 외평기금은 원화자산과 외화자산으로 나뉘어 있죠. 정부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면 외화자산을 풀어 달러를 공급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면 원화자산으로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안정시킵니다. 외평채는 외평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외평채 역시 원래는 원화자산을 조달하기 위한 원화표시 외평채와 외화자산을 조달하기 위한 외화표시 외평채로 나뉩니다. 하지만 원화표시 외평채는 2003년까지만 발행됐고 이후 발행되지 않습니다.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국고채를 발행한 뒤 그 돈을 외평기금 원화자산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최근 외평채라고 하면 외화표시 외평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외평채를 발행하는 1차 목적은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것입니다. 외환보유액이 늘면 환율이 일시적으로 오르거나 내릴 때 안정을 위해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더 생깁니다. 또 늘어난 외환보유액은 그 자체로 투기세력이 함부로 환율을 흔들 엄두를 못 내게 막는 방패가 됩니다. 정부는 외평채를 발행하면서 해외 투자가들에게 미국 국채금리에 일정 수준의 금리를 더 얹어줍니다. 이를 ‘외평채 가산금리’라고 부르죠.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부도날 위험이 높은 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우리나라 은행이나 기업이 외국에서 발행하는 채권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죠. 외평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는 것은 계획한 금액만큼의 외평채를 비교적 낮은 금리로 발행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투자가들이 한국의 부도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만큼 국가신인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도 생깁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외평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해 ‘9월 위기설’이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며 뉴욕의 월가로 갔습니다. 하지만 투자가들이 높은 가산금리를 요구하는 바람에 발행을 포기했죠. 이후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등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외평채 가산금리는 지난해 10월 8%포인트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7개월 만인 이달 9일 30억 달러의 외평채를 4∼4.375%포인트의 가산금리로 발행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신용등급이 2, 3단계 높은 아부다비 정부채권과 비슷한 수준의 가산금리를 주고 채권을 발행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이번 외평채 발행으로 한국은 외환보유액을 30억 달러 정도 늘릴 수 있게 됐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줄이고 앞으로 우리나라 은행,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죠. 한국 경제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외국인투자가들이 몰리는 바람에 발행금액을 10억∼20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늘린 것도 이런 기대를 뒷받침합니다.
미국의 경제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씨는 13일 블룸버그통신에 실린 칼럼에서 “지난주 한국이 30억 달러의 외평채를 발행할 때 두 배 이상의 자금이 몰린 것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날아온 좋은 소식”이라고 썼습니다. 이 칼럼의 제목은 ‘뉴욕에서 7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좋은 소식이 샘솟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번 외평채 발행으로 한국 경제가 조금이나마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