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그 골잡이였었는데 6G 골 침묵 ‘벙어리 냉가슴’
“말도 못했죠. 수염도 깎지 못했는데….”
내셔널리그 득점왕도 K리그 무대에선 그저 ‘새내기’일 뿐이었다. 잘 터지던 득점포는 무슨 영문인지, 계속 침묵했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강원FC의 공격수 김영후(26) 얘기다.
컵 대회 2경기를 포함, 시즌 초반 6경기를 치르며 김영후는 한 번도 골 맛을 보지 못했다. 원정 때마다 김영후와 한 방을 쓰는 ‘절친 후배’ 윤준하도 슬슬 눈치만 보고 말을 걸지 못했다. 곧잘 함께 했던 ‘철권’ PSP 내기 게임을 하자는 제안도 할 수 없었다. 특히, 5일 인천 원정이 컸다. 동갑내기 여자친구
가 처음으로 경기장을 찾은 그 날, 김영후는 풀타임을 뛰었지만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가뜩이나 조용했던 그의 말수는 점점 적어졌다.
수염도 깎지 않은 채 오직 훈련에만 열중했고, 숙소에선 조용히 독서를 했다. ‘독서광’으로 불릴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김영후가 요즘 심취한 소설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여기서 강원 관계자도 말실수를 범했다. “(김)영후야, 엄마는 됐고 골을 부탁해!” 농담조로 웃으며 건넨 이 한 마디에 김영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최악의 상황. 뭔가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 최순호 감독도 딱히 미팅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극복하라는 의미였다. 스트라이커 출신인 최 감독 본인도 공격수의 골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 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하루가 다가왔다. 11일 강릉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전남전. 염색했던 머리를 다시 검은색으로 바꾼 김영후는 이날 오전 기도를 드리며 간절한 자신의 바람을 하나님께 전했다. 스코어 1-1에서 전반 36분 페널티킥 찬스가 왔다.
주장 이을용이 당초 PK 키커로 예정된 김진일과 김영후를 곁으로 불러들였다. 벤치의 지시는 없었지만 이을용은 “영후가 이번에 차라”고 했다. 침착하게 오른발 킥으로 염동균이 지킨 전남 골망을 갈랐다. 한 번 터지자 또 찬스가 왔다. 후반 32분 윤준하의 패스를 잡아 김영후가 역시 오른발로 골네트를 갈랐다. 3-3 동점골.
“영후형의 득점을 돕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윤준하의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는 벅찬 마음에 눈시울을 붉힌 김영후를 꼭 껴안은 채 넌지시 귀엣말을 했다. “이젠 ‘철권’ 할 수 있지?” “당연하지. 음료수도 쏜다.”
앞서 전반 14분 곽광선의 헤딩골을 도와 2골-1도움이었다. 10점 만점에 10점짜리 활약이었다. 쉽지 않은 K리그 도전기. 혹독했기 때문에 훨씬 값졌다. “이젠 자신감이 붙었어요. 진짜 실력을 발휘해야죠.”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선 김영후의 또 다른 내일이 기대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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