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씨가 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사진 제공 크레디아
피아니스트 임동혁, 세 가지 편견을 반박하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25)는 2일 서울 예술의 전당 내 카페 ‘모차르트’ 앞에서 봄바람을 맞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싸늘한 바람, 가느다란 손가락…. 체질상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이 ‘51kg의 청년’은 건강을 위해 홍삼과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긴다.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에마누엘 엑스를 사사하는 임 씨는 영국 노던 신포니아 내한공연 협연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4월 초 예브게니 키신 내한 공연을 본 뒤 뉴욕으로 돌아갔다. 그는 5월 24일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씨(68)가 서울에서 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에 출연한다. 아르헤리치 씨는 2001년 임 씨의 연주를 본 뒤 가장 강력한 후원자가 됐다.
○ 재도약의 시기
임 씨는 이번 무대를 계기로 최근의 슬럼프를 뒤로하고 다시 날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제 나이가 앞이 확실히 보이는 시기는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분명한 건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건 음악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2위 입상자를 인정할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2001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3위), 2005년 쇼팽 콩쿠르(3위),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4위) 등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2006년부터 2년여간 슬럼프에 빠져 피아노도 멀리 했다. 그사이 김선욱, 김태형 씨 등 후배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슬럼프를 겪은 일은 솔직히 후회해요. 더 노력했더라면 좀 더 괜찮은 연주자가 됐을 것 같은 아쉬움도 있고요. 뒤돌아보면 노력보다 재능에 더 의지했나 봐요. 반짝이는 재능만으론 오래 못 간다는 거 알아요. 엑스도 ‘너는 재능이 독일 수 있다’고 그러셨어요.”
2007년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벳부 아르헤리치 음악제’는 그를 발굴한 아르헤리치 씨와 함께하는 뜻 깊은 무대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애정이 많아요. 저도 그를 ‘피아노의 신(神)’이라고 생각합니다.”
○ 편견을 거부한다
‘임동혁’이라는 이름은 ‘거침없는 솔직함+직설화법’과 나란히 놓인다. 이 때문에 국내 클래식계에선 환영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임 씨는 “나를 둘러싼 세 가지 편견이 있다”며 조목조목 해명했다.
▽‘싸가지’ 없다=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 지휘자나 악장과 사전에 얼굴도 익히고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낯가리는 성격 때문에 잘 못해요. 미국에서 생활하며 자기 홍보나 커리어 관리에만 몰두하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피아니스트로서 자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쇼팽이 전문이다=아닙니다. 사실 슈베르트예요. 피아노를 칠 때 늘 노래하면서 치려고 해요. 슈베르트의 감미롭고 낭만적인 곡이 제 스타일과 잘 맞아요. 이번 ‘아르헤리치 음악제’에서 연주하는 라벨의 곡도 어느 정도 좋아하죠. 전 오밀조밀 예쁘게 치는 편이랄까…. 묵직한 스타일의 선욱이(김선욱)와 대비되지요. 브람스도 잘 안 맞아요. 선욱이는 잘 치지만. 선욱이의 쇼팽은, 글쎄요? (웃음)
▽강심장이다=무대 울렁증 정말 심해요. 특히 한국 공연에서요. 무지무지 떨려요. 연주하기 전에 먹은 걸 다 토할 정도니까 말 다했죠. 사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요.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속을 다 버려서 이번에 한국에서 위 내시경 검사 받아요.
△벳부 아르헤리치 페스티벌=5월 2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5만∼20만 원. 02-318-4301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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