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도우미 550여 명이 2박 3일 일정의 기차여행을 떠났다.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은 이들은 관광지를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진 제공 청주MBC
“난생처음 기차로 세상나들이”
장애터널 벗어나 희망 역으로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14일 오전 평소 한산했던 충북 청주시 청주역 앞 광장이 북적거렸다. 470여 명의 장애인이 2박 3일 일정으로 기차여행을 떠나는 날. 대다수 참가자들은 처음 떠나는 기차여행에 출발 전부터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청원군 장애인총연맹이 주최하고 청원군, 청주MBC, 코레일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2009 함께하는 세상, 우리는 세상 속으로 간다’는 주제로 청원군과 경기, 전북, 대구 지역 장애인 470여 명과 가족 자원봉사자 80여 명 등 총 550여 명이 참가했다.
○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오전 10시 기차가 출발하자 장애인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창가 쪽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서정문 씨(52)는 “오십 평생 기차를 처음 타 본다”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떠나니 너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청원군 장애인복지시설에 거주하는 그는 2급 지체장애인으로 평소 걷기도 어려워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윤건용 씨(62)도 10여 년 만의 여행에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윤 씨는 1997년 금융위기 여파로 회사가 부도나고 설상가상으로 반신마비가 와서 왼쪽 팔과 다리를 쓸 수가 없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 앉아 마누라 보기도 미안하고 사는 낙도 없었다”며 “평생 기차는 타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여행을 하다니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이번 여행은 청주를 출발해 전북 남원, 전남 순천, 경남 밀양, 경북 김천을 기차와 버스로 이동하며 산과 바다를 모두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졌다. 처음 목적지인 남원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40여 분 동안 기차 안에서는 레크리에이션과 풍선 마술쇼, 춤 경연 등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만세 소리가 들리고 웃음이 끊일 줄 몰랐다. 피에로 분장을 한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만들어준 풍선 모자를 하나씩 나눠 쓰고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몸을 흔들며 웃었다.
열차가 남원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은 관광버스로 갈아타고 국립민속국악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사물놀이와 춘향전 공연을 1시간 동안 관람했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의 호응이 컸다.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다가 공연이 끝나자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 버스를 타고 춘향전의 무대인 광한루원으로 이동한 이들은 이몽룡과 성춘향처럼 광한루 앞에서 포즈를 취한 채 사진을 찍기 바빴다. 시각장애인들은 도우미의 설명을 들으며 봄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애인들의 여행에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데만 30분 이상이 걸렸고, 작은 턱에도 휠체어는 멈춰야 했다.
○ 공연 보고 관광하고… “행복해요”
저녁식사 후 노래자랑과 축하공연 관람을 마치고 지리산의 펜션 숙소에 짐을 푼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피로감이 엿보였다. 여행의 흥분에 쉽게 잠이 들지 못한 참가자들은 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도 이날만큼은 없었다. 휠체어를 탄 박헌용 씨(63)는 “이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유미선 씨(24)는 “처음 참가한 자원봉사인데 장애인분들 덕분에 보람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함께 떠난 아름다운 동행의 첫날은 내일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저물고 있었다.
남원=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