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프의 ‘영원한 현역’인 최상호 프로가 16일 남서울골프장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최고령 우승(50세), 최다승(43회) 기록 보유자인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훈련에 매달리는 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성남=김종석 기자
“10시면 골프장 출근… 해져야 집에 가죠”
“가는 곳마다 위로를 받느라 바빴어요. 어이없이 무너졌잖아요. 그래도 이 나이에 젊은 후배들과 경쟁한 것만도 영광이죠. 역시 우승은 누군가 결정해 주는건가 봐요.”
잠시 망설이다 아예 ‘그 일’부터 물어봤더니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필드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50세)도 이미 오래전에 넘긴 그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한국프로골프(KPGA)의 ‘영원한 현역’ 최상호(54·카스코). 그를 만난 16일 경기 성남시 남서울골프장에는 전날 내린 비로 떨어진 벚꽃잎이 길 위에 날리고 있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만 최상호는 벌써 30년 넘게 필드를 굳게 지키고 있다. 그것도 여전히 우승 경쟁을 벌이면서…. 칙칙하게 보이기 싫어 원색 셔츠를 자주 입는다는 최상호는 12일 끝난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서 4라운드 16번홀까지 단독 선두를 달렸다. 자신이 갖고 있던 최고령 우승(50세)과 최다승(43회) 기록을 깨뜨리는 듯했다. 하지만 17, 18번홀에서 연속 3퍼트를 하면서 2타를 잃어 3위에 머물렀다. “17번홀은 15m도 넘게 남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18번홀은 5∼6m를 남겼거든요. 버디면 우승이 확정되기에 욕심을 냈어요. 그러다 보니 컵을 지나쳤죠. 노안(老眼) 탓에 퍼트 귀재라는 얘기도 옛말이 됐나 봐요, 허허.” 마침 다음 날 마스터스에서 메이저 최고령 우승을 노렸던 케니 페리(48·미국)가 선두를 질주하다 최종일 17, 18번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기에 더욱 화제가 됐다.
최상호는 KPGA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77년 프로 테스트 통과 후 1978년 여주 오픈에서 첫 승을 거두며 상금 300만 원을 받았다. 1981년부터 5년 연속 KPGA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10차례나 상금왕에 올랐다. 지금은 KPGA 수석 부회장을 겸하고 있다.
장수의 비결은 따로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재산을 물려받았죠. 뭐든 잘 먹고 튼튼했어요. 한순간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덕분이죠. 후배들에게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골프장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장비가 좋아져 요즘도 드라이버를 270야드는 쳐요.”
그는 20, 30대 때 하루에 1000개 이상의 공을 쳤다. 20년째 헤드 프로를 맡아 온 남서울골프장에서 보낸 시간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았다. 오전 10시면 골프장으로 출근해 어두워질 때까지 클럽과 씨름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저에겐 골프가 비즈니스입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려면 반은 미쳐야 하듯 골프가 그랬습니다. 스트레스도 연습으로 풀었습니다. 내 몸이 편안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지론입니다.”
골퍼의 길이 워낙 힘들었기에 어느덧 20대 후반이 된 두 아들에게는 클럽을 쥐여주지 않았다. “내 길만 걸은 것 같아 가족에게 미안하죠. 2년 뒤 은퇴하면 가족과 가끔 필드를 나가야죠. 평생 골프만 했으니 후배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게 남은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성남=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