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55km로 광란의 질주.’
16일 거의 모든 국내 언론이 보도하면서 관심을 집중시킨 뉴스의 제목이다. 최대 17억 원짜리 수입 슈퍼카로 폭주를 일삼은 30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내용이다. 이번 사건은 고성능 자동차를 가진 몇몇 개인이 저지른 일탈의 문제로 의미를 축소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경제시스템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가고,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의 수익을 위해 미리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1886년 칼 벤츠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 차는 시속 15km에 불과했다. 이후 자동차회사들 사이에 성능 경쟁이 불붙으면서 속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현재 가장 빠른 차는 부가티에서 만든 ‘베이론’으로 시속 407km에 이른다. 배기량 2000cc의 보통 자동차도 시속 200km 정도는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아우토반의 속도무제한 구간과 미국 몬태나 주의 고속도로를 제외하고는 세계 각국은 대부분 100∼130km로 법정 제한속도를 두고 있다. 자동차는 일반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를 생산할 때부터 법정 제한속도에 맞춰 더는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만들면 과속이나 폭주 같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만 그렇게 하는 국가는 없다. 너무 엄격한 하드웨어적 규제는 사고율을 더 높인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 속내는 산업생산을 위축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운전자들은 시속 100km밖에 달리지 못하는 자동차를 사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자동차산업은 위기를 맞고 세계 경제 역시 주춤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결국 인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지구를 소모해버리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재 인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외치며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등 다양한 방향으로 노력한다고 하지만, 무한경쟁과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시장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이를 실행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실제로 정신적 지도자들이나 석학들은 이런 문제점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를 던져왔다. 법정 스님은 지난해 12월 14일 길상사 창건 11주년 법회에서 법문을 통해 “성장 위주의 정책과 무절제하고도 부도덕한 경제 팽창은 한정된 자원으로 지속될 수 없고, 이는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미래 세대의 몫을 빼앗는 나쁜 것”이라고 밝혔다.
에코이노베이션의 창시자인 야마모토 료이치 일본 도쿄대 교수도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을 좇는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해 자폭한 것이다. 경제성장이 ‘자원이나 환경을 마구 써버리는 일’을 뜻한다면 그런 성장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정작 경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자동차로 폭주하는 사람들의 일탈이 아니라 그런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현재의 경제시스템과 그것을 어떻게 통제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석 동 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