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설 국제정책대학원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로 물의를 빚고 있다. 2001년 7월부터 2007년 7월까지 국제정책대학원장을 지낸 정진승 씨는 직속 상급자인 KDI 원장의 승인도 없이 매년 자신의 연봉과 성과급을 크게 올린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밝혀졌다. 그는 자신의 연봉 인상률을 교직원 인상률의 2배로 책정해 퇴임 전해인 2006년에는 KDI 원장보다도 많은 보수를 받았다.
▷이 대학원 교수 15명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평일 골프나 사적(私的) 해외여행으로 총 186일을 무단결근했다. 11명은 평일 골프를 치느라 105일을 학교에 안 나왔고, 9명은 사전승인도 받지 않고 해외여행을 35차례 다녀왔다. 두 가지를 병행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대학원에서 연구와 강의가 제대로 이루어졌을지 의문이다. 부설 대학원의 비리(非理)는 경제 분야의 대표적 국책 싱크탱크인 KDI의 이미지까지 추락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제 공공기관장들에게 “당면한 문제를 감추고 시간을 질질 끌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면서 “여러분이 맡은 조직은 스스로 개혁하고 자신이 없으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공기업 선진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국회에 로비를 하는 노조도 있고, 이것을 은근히 부추기는 최고경영자(CEO)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경제난으로 많은 국민이 힘들어하는 때에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CEO와 노조가 개혁과 고통분담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풍지대(無風地帶) 같은 공공기관이 적지 않다.
▷정부는 말로만 엄포를 놓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입만 열면 공기업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방만 경영과 비리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정부는 공무원보다 더한 ‘철밥통’으로 꼽히는 공기업의 환부(患部)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단호하게 도려내야 한다. 김황식 감사원장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탈법적 노사관계, 감독관청의 방관적 태도를 공기업 방만 경영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고위 당국자들부터 ‘논평(論評)’만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 개혁론은 오히려 국민을 화나게 만든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