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손, 뉴요커 입맛 요리하다
‘수 셰프’(Sous Chef). 우리말로 하면 부주방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주방장(셰프)도 아니고 부주방장이 연봉으로 6000만원을 넘게 받는다면 믿겠는가?
일반 레스토랑에서 수 셰프는 셰프 바로 아래 위치를 차지하지만 요리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무대를 뉴욕 등 대도시의 고급 레스토랑이나 특급호텔로 옮기면 얘기는 드라마틱하게 달라진다.
뉴욕에서 미슐린 스타나 제임스 비어드상(요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함)을 받은 고급 레스토랑의 경우 요리학교 등을 통해 기본을 익히고 처음 레스토랑 키친에 들어가면 파스타 라인, 샐러드 라인, 피시 라인, 스테이크 라인 등 각 라인에 배속돼 요리를 배운다.
재미있는 사실은 라인에도 등급이 있다는 점.
신참은 파스타 라인부터 배우고, 맨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라인으로 간다. 라인에서 기본적인 일을 익힌 다음 코스는 소시에. 소스를 만드는 과정을 밟는다. 이걸 마스터하면 ‘셰프 드 파티’로 승진한다.
각 라인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다음 단계는 ‘토넌트’로 셰프 드 파티를 관리한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교육하는 일도 담당한다. 이런 식으로 평균 6∼7년의 과정을 밟으면 ‘수 셰프’의 자리에 오른다. 이는 이그제큐티브 셰프(총주방장), 이그제큐티브 수 셰프(부총주방장)에 이어 키친에서 세 번째로 높은 서열.
이그제큐티브 셰프는 30만∼40만 달러를 받고, 수 셰프는 4만∼5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이그제큐티브 셰프야 레스토랑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니 그렇다 쳐도, 수 셰프에 대한 대우까지 상당한 수준.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정 씨는 “고급 레스토랑 수 셰프의 연봉이면 미국에서 중산층이 받는 월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 수 셰프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갈 경우 VIP 대접을 받는다. 다시 말해 경제적인 안정감과 사회적인 대우를 동시에 받는다.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그래머시 테이번’(Gramercy Tavern)에서 수 셰프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송훈(31) 씨를 만났다. 2002년 군 제대 후 미국으로 건너가 요리전문학교 CIA에서 AOS(2년 짜리 실무 과정) 코스를 밟은 그는 그래머시 테이번의 마이클 앤소니 총주방장에게 발탁돼 이례적으로 6개월간 요리를 직접 사사받았다.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주방에서 일을 해보는 ‘트레일 앤 스타쥬’라는 과정을 밟는데 이 때 열심히 하고, 빨리빨리 하는 모습이 앤소니 총주방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
송 씨는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때는 무시당하는 등 동양인에 대한 텃세가 있었다. 힘들지만 그들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싸우고, 열심히 일하면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수 셰프의 꿈은 이그제큐티브 셰프다. 레스토랑을 대표하는 셰프가 되는 것.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철학이 담긴 음식을 만들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갖는 거다.
이른바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다. 미국 뉴욕에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꿈 때문이다.
그런데 송 씨의 꿈은 다소 다르다. 자신이 이국땅에서 힘들게 배웠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위해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송 씨는 “시간이 물론 필요하다. 배울 게 여전히 많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레스토랑에서 다른 요리도 배울 계획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거다. 요리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학원 등을 만들어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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