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관을 훈련시키는 학교를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는 매우 간단하다. 책상과 의자를 갖춘 교실 하나면 된다. 책상에 앉은 교사가 외국 정상 역할을 한다. 학생들은 외국 정상(실제로는 교사)이 어떤 결정을 내리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훈련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외국 정상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 말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척만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외국 정상들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예측해야 한다.
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북한 등의 지도자들과 협상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인지 의심스럽다.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은 외교력이 절대적인 시대가 아니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다른 국가나 상대편이 어떤 일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을 때 협상에 나설 수 있다.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강대국에 의존하는 종속국들이 비교적 분명했던 냉전 시기에는 그렇게 할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소련과의 무기통제 협상이나 각 종속국가 사이의 평화유지 협상에 이런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약탈자와 실패국가 등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시대다.
진부함이 미국 외교정책에 배어 있다. 아프간 파키스탄 북한 이란 등 주요 문제를 대할 때 미국은 똑같은 사람에게서 똑같은 카펫을 반복적으로 구입하면서 돌아다니기만 한다. 변한 것은 없다. 존스홉킨스대에서 외교정책을 가르치는 마이클 맨덜바움 교수는 “우리는 구원될 수 없거나 구원되기를 바라지 않는 국가 및 지도자들과 협상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들과의 쟁점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구원될 수 없는 경우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좋은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여러 노력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이란과 북한은 구원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례다. 말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미국과 서방에 대한 적대심이 그들 체제를 유지하는 생존전략의 핵심이자 권력 유지를 위한 정당성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구도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과 우방국들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란과 북한을 미국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세력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나는 미국 정부가 중도노선을 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도노선은 붕괴를 막을 수는 있지만 문제를 풀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대한 미국의 목표가 자생능력을 갖춘 온건정부 탄생이라면 우리는 군대와 자원 모두 부족한 상태다. 미국의 목표가 이란과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우리는 효과적인 외부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도전적인 미사일 발사와 이란의 지속적인 핵 개발 추구는 이를 입증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이들 4개 문제국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을 변화시킬 영향력이 부족한 상태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문제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없는 가운데 이들 국가와의 약속에 끌려가는 것도 걱정스럽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도노선을 추구한다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발전과 여성 인권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 너무 깊숙이 빠져드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살펴볼 때 중도노선은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전 이라크를 생각해보라.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