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깊은 새벽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서신을 띄우는 것은 저 노무현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얼마간 도움을 좀 받은 얘기를 갖고 검찰이 너무 막가자는 거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저의 집’이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는 빚 갚기 위해 빌린 것이고요, 박 회장이 조카사위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는 ‘호의적 거래’요, 투자일 뿐입니다. 저보고 ‘600만불 받은 사나이’라고 하지만, 부패와 불의가 판치던 시절엔 10배, 100배 더하지 않았던가요. 재임 중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구속됐던 전두환 노태우의 반열에 저를 올리는 것은 5공 청문회 때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져 뜨게 된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입니다. 저는 검찰이 2003년 3월 TV로 생중계된 ‘평검사와의 대화’ 때 제게 섭섭한 기억을 품었다고 ‘너 이제 당해봐라’는 억하심정으로 이런다고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4·29 재·보선을 맞아 민주당 안팎에선 서로 “네가 친노(친노무현) 아니냐”고 손가락질한다는데 기가 막힙니다. 2003년 노무현 노선을 따라 민주당 깨고 열린우리당 만들어 장관까지 했던 사람들, 2004년 탄핵파동 때 울고불고 탄핵풍에 올라타 금배지 거저 주운 사람들이 누굽니까. 이명박 정권도 4년 뒤 감옥 가는 사람이 없는지 두고 보십시다. 저 사람들은 처음부터 개혁이나 도덕성 얘기는 하지도 않습니다.(하략)
위에 인용한 편지는 필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속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며 써 본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말하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에게 노 전 대통령은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싶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최근 4차례나 홈페이지를 통해 쏟아낸 글에도 이런 인식이 묻어난다.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항변은 그를 좌파 이념의 영원한 대변자요, ‘도구’로 지키고픈 사람들에겐 위안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에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체포영장 발부 직후 내놓은 ‘골목성명’보다도 실망스럽다. 당장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2006년 8월 박 회장에게서 받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 채무 변제에 썼다는 3억 원도 계좌 추적 결과 노 전 대통령 측 진술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방어선을 쳤던 ‘프레임(틀)’이 계속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재임 5년간 개혁과 도덕성을 입에 달고 살았던 대통령의 일가족과 측근들은 청탁 로비와 횡령 탈세로 얼룩진 기업인들의 비자금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쌈짓돈처럼 받았다. 국민은 처음에 놀랐지만 지금은 전개 양상을 보며 실망이 커지고 있다. 축재(蓄財) 의혹 사건을 저질러 놓고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따져보자”는 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검찰이 그렇게 들쑤셔도 고작 그것밖에 더 나오냐”고 비아냥대는 ‘노빠부대’, 그 낯 두꺼움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지금 노 전 대통령에게 필요한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치성 변명이 아니다. 재임 중 언급했던 ‘구시대의 막내’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려면 일말의 자기반성과 책임의식이라도 보여줘야 한다. 자신이 꿈꾸었다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기는 애초 틀렸다 해도.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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