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코너 맡았더니 방망이도 소핫!”
4월 19일 목동구장 기자실. 한 선수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타율은 5할에 가까운 0.468로 1위, 득점(13점), 최다안타(22개), 장타율(0.830)은 2위다. 특히 개막 이후 13연속경기안타를 기록했다. 이날도 2루타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누구의 기록일까? 주인공은 히어로즈 3루수 황재균이다. “기자실에 처음 와봤어요. 이렇게 많은 질문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아직 이름과 얼굴이 낯선 선수다.
그러나 황재균은 올시즌 8개구단을 통틀어 가장 매서운 타자로 히어로즈의 초반 돌풍을 이끌고 있다. 기자실에서 덕아웃으로 자리를 옮겨 마주한 황재균은 인터뷰도 처음이라며 수줍어했다.
○청소년국가대표 출신과 경쟁하며 이를 악문 신인 유격수
2006년 현대 유니콘스의 플로리다 스프링캠프. 열아홉 살 신인 황재균은 떨리는 마음으로 수비연습을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포지션인 유격수. 그러나 함께 훈련하고 있는 다른 유격수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3년 선배 지석훈, 1년 선배 차화준, 그리고 동기생 강정호까지 모두 청소년국가대표 유격수 출신이었다. 특히 강정호는 광주일고 출신 전국구 고교스타로 ‘야구천재’라는 말까지 듣던 터였다.
현대는 박진만이 2004년 시즌을 끝으로 FA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떠나자 신인 2차지명 1순위로 유격수를 3년 연속 뽑았다. 그 결과 2006년 스프링캠프에는 황재균을 빼고도 특급 유망주 유격수가 3명이나 있었다. 경기고 출신 황재균은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청소년대표 역시 언감생심이었다. 이름값이 뒤졌다. 그래서 황재균은 남들보다 더 뛰었고 한번이라도 더 배트를 휘둘렀다.
○김시진 감독의 발굴 그리고 좌절
동기 강정호는 간간이 1군에 출전했지만 데뷔 첫해 황재균은 줄곧 2군에 머물렀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 그러나 황재균은 야구 외에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2007년 유니콘스 마지막 감독으로 취임한 김시진 감독은 황재균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주전 선수로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현대는 히어로즈가 됐고 김시진 감독은 옷을 벗었다.
작년 시즌 초반 황재균은 수비실책을 몇 차례 했고 점차 선발 라인업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저도 모르게 위축됐어요. 실책을 하나 하면 ‘큰일 났다’고 걱정하고, 다음 수비, 타격까지 영향을 받았어요.” 특히 유격수에서 밀려났을 때 충격이 컸다. “절망적이었어요. 야구하기도 싫었고 군대에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FA 정성훈이 떠난 히어로즈 3루
황재균은 올해 돌아온 김시진 감독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시즌 끝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건 아닌 것 같다. 다시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믿고 채찍질해줬던 감독님이 돌아오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그리고 황재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히어로즈 3루를 지키던 정성훈이 FA자격을 얻어 LG로 떠났고 김시진 감독도 황재균에게 3루를 권했다. 포지션이 안정되니 타격도 잘됐다. “3루를 잡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제 유격수는 전혀 미련 없습니다. 유격수 맡고 있는 강정호와 내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함께 뽑히고 싶어요. 청소년대표를 단 한번도 못했어요. 성인 대표팀이야말로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황재균은 최근 물오른 타격실력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마음이 편하니까 방망이도 잘 맞아요”라며 웃었다. “13경기 연속 안타요? 전 몰랐어요.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았어요. 지난해는 하루 못 치면 조마조마 했는데 올해는 믿어주니까 부담 없이 열심히 뛸 수 있어요.”
황재균은 스스로 “마음을 비워서”라고 말했지만 스프링캠프에서 하루 1000개 이상 스윙연습을 하고 늦은 밤까지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힘을 키웠다. 김시진 감독도 “정성훈의 공백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며 깊은 믿음을 보였고, 두산 김경문 감독은 황재균의 타격을 보며 “연습을 많이 한 티가 온 몸에서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참 놀기 좋아할 나이지만 술 담배를 일절 삼가고 오직 야구에만 전념하는 성실함이 뒷받침됐다.
○아시안게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정신력
황재균은 성실성을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였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려받았다고 했다. 아버지 황정곤 씨와 어머니 설민경 씨는 1980년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특히 어머니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처음 야구를 할 때 어머니는 운동이 힘들다며 반대를 하셨지만 한번 시작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아버지는 운동선수는 자기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금도 말씀하세요.”
황재균은 올해 목표를 묻는 질문에 “지금처럼 시즌 내내 잘 칠 수는 없겠죠. 올해 목표는 주전 3루수가 되는 겁니다. 한 게임 한 게임 뛰며 많이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성적을 생각했을 때 지극히 소박하다. 그러나 소중한 꿈을 갖고 있었다.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려면 타격, 수비 다 잘해
야겠죠? 대표팀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겠습니다.” 황재균은 처음처럼 수줍게 웃으며 뛰어갔다.
황재균?
1987년 서울생으로 사당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이수중과 경기고에서 유격수로 뛰었고 2005년 청룡기에서 타점상과 도루상,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2차 3순위로 지명돼 프로에 입문했다. 2007 시즌 1군 무대에 데뷔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2008년 시즌부터 3루수로 전업, 올시즌 맹활약하고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관련기사]‘6G 연속 멀티히트’ 황재균 “살아나가야겠다는 생각뿐”
[관련기사]정성훈 공백 잊게 만드는 황재균의 ‘맹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