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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책과 인사한다면 책 잡기 한결 편하지 않을까요”

입력 | 2009-04-23 02:58:00

“세상 이야기가 담긴 책을 통해 희망의 멜로디를 전하고 싶어요.” 시, 소설의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밴드 ‘북밴’. 왼쪽부터 김대욱, 이수진, 김진무 씨. 홍진환 기자


문학 노래하는 밴드 ‘북밴’

21일 오후 9시 반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스튜디오. 김대욱 씨(28)의 기타와 김진무 씨(29)의 건반 연주로 보사노바풍의 전주가 흐르자 보컬 이수진 씨(31)의 은은한 음색이 깔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날 이끌어 가네/자물쇠가 달린 일기장 속 이야기들/책장 사이 시간 너머 마주한 어린시절/두근거리던 나의 꿈 앞에선 이 공간….”

일본 작가 스에요시 아키코의 성장소설 ‘노란 코끼리’로 만든 동명의 노래에 문학적 감성이 묻어난다. 책(문학)을 노래하는 밴드, ‘북밴(book band)’이다.

작품 읽은 감동 살려 시 소설 산문도 노랫말로

“문학팝 100권이 목표”

북밴은 2007년 출발했다. 당시 책 전문 인터넷 매체에서 일했던 김대욱 씨가 주축이 됐다. 그는 “베스트셀러인 일부 작품 외엔 사람들이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는 게 아쉬웠다”며 “텍스트로만 다가가는 것보다 노래와 함께하는 것이 문학의 감동을 널리 알리기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북밴 멤버들은 본업이 따로 있다. 김대욱 씨는 음악 등 문화 분야의 글을 쓰는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고 이수진 씨는 정보기술(IT) 관련 솔루션기획자, 김진무 씨는 작곡, 편곡을 하고 있다. 연습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아 주말, 혹은 밤늦게 틈틈이 만나 연습한다. 5월 20일에는 숭실대에서 소설가 은희경 씨의 작품 중 하나를 노래로 만들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은 씨도 함께한다. 5월 23일에도 서울 성동구 도원문고에서 공연한다.

여러 문학행사에 초청을 받아 공연해 온 이들이 지금까지 노래의 소재로 삼은 문학작품은 정호승 시인의 ‘넘어짐에 대하여’, 고은 시인의 ‘독도’뿐 아니라 이순원 작가의 소설 ‘19세’, 김경주 시인의 산문집 ‘패스포트’ 등 30여 편에 이른다. 시를 노랫말 삼아 곡을 붙인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이들처럼 소설이나 산문을 노래로 만드는 건 새로운 시도다. 시로 노래를 만들 때는 원문에 거의 손을 대지 않는 편이고 소설과 산문은 읽고 나서 느낀 감동과 떠오르는 이미지로 가사를 새로 쓴 뒤 곡을 붙인다.

이 씨는 “가사는 책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음악은 모던록부터 발라드, 재즈 풍으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친근하고 대중적으로 접근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리터팝(literary pop·문학팝)’이다.

이들은 “우리 작업은 작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독자에게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라며 “관객들이 노래를 듣고 난 뒤 그 작품을 꼭 사서 봐야겠다고 했을 때 더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책과 노래는, 그래서 이들에겐 불가분의 관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스튜디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둘은 젓가락과 숟가락의 관계다’부터 ‘책 읽기는 밥 먹기와 동급이라 고르기가 힘들다’ ‘음악과 문학은 쌍둥이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한국 문학의 현재에 대한 의견도 털어놨다.

“흔히 우리나라 소설은 소재가 다양하지 못하고 주제가 무겁다고들 하는데, 그건 요즘 작품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박민규 이기호 작가 작품은 배꼽을 잡아요. 김중혁 작가도 기발하죠. 김애란 편혜영 작가는 또 어떻고요. 독특한 감수성과 언어를 갖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런 기우가 편견이란 걸 알 수 있어요.”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들이 제안하는 방안은 간단했다. ‘어깨에 힘을 빼자’다. 독서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고상한 취미, 혹은 성가시고 까다로운 일이 아님을 알려야 한다는 것. 이들은 음악을 통해 책과 사람 사이의 가교 역할을 강화할 생각이다. 김진무 씨는 “지금까지 문학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우리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문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활동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밴의 꿈은 “문학작품으로 만든 노래 100곡을 고전문학전집처럼 묶어내는 것”이다. 책과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이들은 연습으로 분주했다. 잔잔한 발라드로 재탄생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잊고 있던 당신의 그 얼굴이/망각에 잠긴 유년의 그 기억이/삶과 바꾼 모성의 불시착이/끝내 닫혀 있었던 내 가슴이/깨어난 그곳…엄마를 부탁해.”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 책의 날:

독서 증진을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 제정했다. 공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다. 스페인 북동부 출판 중심지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던 ‘산트 호르디의 날’에서 유래했다. 산트 호르디는 고대 로마시대 순교자로 카탈루냐 지방의 성인이다. 4월 23일은 1616년 세계적 대문호인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스페인의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2002년부터 해마다 ‘세계 책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