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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순활]금융회사 조사권

입력 | 2009-04-23 02:58:00


한국은행법 개정을 둘러싼 1997년의 사회적 갈등은 외환위기를 불러오는 데 일조했다. 태국발(發)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국내 외환시장이 동요하는 데도 한은과 재정경제원은 국난 극복을 위한 협조는커녕 기관이기주의와 대(對)국회 로비로 날을 지새웠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략(政略)까지 끼어들었다. 국회는 석 달이나 계류된 한은법 개정안 등 13개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그해 11월 18일 다시 보류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개혁의지를 판단하는 마지막 시금석으로 간주했던 법안의 표류로 자력에 의한 위기극복 가능성은 사라졌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행을 결정한 것은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였다.

▷금융개혁법안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그해 12월 29일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통화정책에 대한 한은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재경원 장관이 맡던 금융통화위원장을 한은총재가 맡는 대신,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에 나뉘어 있던 각종 금융회사 조사 및 감독권을 신설되는 금융감독원으로 일원화해 금융감독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뼈대였다. 한은은 독립성 제고라는 명분은 챙겼지만 한은 내 조직이던 은행감독원이 떨어져 나가면서 금융회사에 대한 각종 영향력은 현저히 감퇴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경제재정소위는 금융회사에 대한 조사권을 한은에 제한적으로 부여하는 내용의 한은법 개정안을 21일 통과시켰다. 재정위 관할인 한은은 크게 반기고 있다. 재정위와 한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중앙은행의 조사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은의 논리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면 금감원과 금융업계, 금감원을 관할하는 국회 정무위는 중복조사에 따른 금융회사들의 부담이 커진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각자 내세우는 명분 뒤에는 ‘밥그릇 다툼’ 의식이 숨어 있다. 한은 및 재정위는 이번 기회에 금융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부활시키겠다는 생각이다. 반대로 금감원과 정무위는 금융업계서 누려온 독점적 권한의 분산을 우려한다. 의원들의 견해가 소속 정당이 아니라 상임위에 따라 엇갈리는 형편이다. 논의 과정에서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면서도 ‘옥상옥(屋上屋) 규제’의 폐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