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개성공단 돈 더달라” 큰소리… 뒤론 떠나는 南대표단 잡고 “대화하자”
21일 통지문서도 “개성사업 성의와 노력 다하겠다”
정부 “北 판 깨자는 의도 없는듯… 대화 모멘텀 마련”
북한이 21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정부 당국 간 공식 접촉에서 남측 대표단에게 낭독한 뒤 문건으로 전달한 통지문 전문이 확인됐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참여에 대해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했으며 개성공단 사업 유지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남북 간 추가 접촉 여부가 주목된다.
22일 본보가 확인한 통지문에 따르면 북한은 개성공단 특혜조치 재검토 등을 요구하기에 앞서 PSI에 대해 “우리가 이미 전쟁 선포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힌 이른바 PSI는 남북관계를 험악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곧바로 “남측 기업은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북한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얼마 벌지 못하고 있다”면서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없고 손해만 보고 있는데 이런 계약을 그대로 가져갈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또 “땅값도 올리고 노동력값도 올리겠다”면서 “우리는 굉장히 (진정성을 갖고) 개성공업지구 사업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남측은 ‘우리가 돈에 목을 매 (사업을) 깨지 못하고 있다’고 선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2014년부터 지불하도록 돼 있는 토지사용료를 4년 앞당겨 내년부터 낼 것과 북측 근로자의 임금을 조정할 것 등 두 가지 요구사항을 내건 뒤 “우리는 개성공업지구 사업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이같이 통보하면서도 추후 정부 당국 간 대화를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다음 접촉 날짜를 확정해 달라. 이번 주에라도 하자”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우리 측 대표단이 22분간의 접촉을 마치고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귀환하는 동안에도 연락을 해 “가능한 한 (북한 측 요구에) 답을 빨리 줬으면 좋겠다. 내일(22일)이라도 언제 다시 만날 것인지 답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강온 양면책을 구사하고 있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어떻든 남북대화의 모멘텀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북한이) 판을 다 깨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게 우리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라면서 “다만 강경 일변도가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유연하고 탄력 있게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현재로선 북한의 개성공단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PSI 참여 시기와 관련해 “구체적인 제반 상황을 종합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며 “정부에 맡겨 달라”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