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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손숙의 어머니’ 10돌… 재공연하는 손숙-연출가 이윤택 씨

입력 | 2009-04-23 04:09:00

연극 ‘손숙의 어머니’ 10주년 기념공연을 앞둔 배우 손숙 씨와 연출가 이윤택 씨(왼쪽). 손 씨는 “힘들고 아플 때면 사람들은 엄마를 찾는다. 이 작품은 10년 전이나 지금, 10년 후에도 고전이 아닌 영원한 현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孫 “대사 이젠 삶의 일부 됐죠”

李 “한번 배역은 영원한 배역”

“천성아, 괘안나. 어무이 얘기 좀 들어봐라.”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옆 연습실. 인형을 포대기로 멘 배우 손숙 씨(65)가 극중 아들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그러자 졸고 있는 줄 알았던 연출가 이윤택 씨(57)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울지 마시고 저 멀리 좀 바라보십쇼. 울지 마시고 눈 크게 뜨세요. 눈을 크게.” 그는 내내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번뜩이며 손 씨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연극 ‘손숙의 어머니’가 1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날은 첫 무대 연습이었지만 워낙 오래 호흡을 맞춰 공연 직전 리허설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이제 손 선생님은 대사를 외우는 수준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입력된 거 같아요.”(이 씨)

사실 10년 전 계약대로라면 이 공연은 매년 정동극장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1999년 손 씨가 러시아 공연 당시 환경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지 공연이 끝난 뒤 기업인에게서 받은 격려금 파문으로 손 씨는 사의를 표명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날 무대에서 내려오다 팔이 부러졌다. 그만큼 둘에겐 ‘한(恨)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공연’이었다.

“당시엔 속상했지만 어떤 면에서 잘됐다고 생각해요. 장관 자리에 더 있었더라면 내가 빨리 연극무대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덕분에 20년간 ‘어머니’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죠.”(손 씨)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부터 분단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남편의 바람기와 혹독한 시집살이, 자식의 죽음까지 겪은 곡절 많은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이 씨는 “잔소리 많았던 나의 어머니를 모델로 했지만 강인하고 유쾌하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모두 녹아 있다”고 말했다.

공연은 정동극장을 떠나 예술의 전당, 코엑스 등으로 무대를 옮기며 10년간 이어졌다. 앞으로 둘은 다시 10년간 ‘손숙의 어머니’를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명배우가 한 배역을 하면 그가 죽을 때까지 배우를 바꾸지 않는 게 예의 아닙니까. 배우가 무대 위에서 죽으면 ‘극락’ 가는 거지.”(이 씨)

그러나 손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무대 위에서 죽고 싶지 않아.(웃음) 물론 10년 후까지 설 수는 있겠죠. 나이 때문에 못할 건 없으니까. 그래도 그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어떻게 알아요.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지.” 25일부터 5월 24일까지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 극장. 02-333-7203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