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도무지 생선가시를 발라낼 줄 모른다. 병어 전어 준치같이 잔가시 많은 생선은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통통한 갈치구이나 겨우 한두 번 집적거려 볼까. 그것도 어설픈 젓가락질로 가운데 살집 부분이나 몇 번 헤집어 떼어 먹으면 그만이다. 갈치 살은 부스러져 밥숟갈에 놓일 때는 정작 몇 조각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생선 발라내는 솜씨는 예술이다. 접시 위 갈치구이가 순식간에 뼈만 추려져 나온다. 뼈는 겨울나무 가지처럼 가지런하다. 가느다란 부채 살조차 조금도 부러지거나 부스러지지 않는다. 살집은 각설탕처럼 네모 반듯반듯하게 떨어진다.
어르신들은 어떻게 갈치 가시를 발라낼까. 먼저 젓가락으로 갈치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을 조심스럽게 죽 떼어낸다. 그러려면 갈치 양쪽 갓길 선을 따라 젓가락으로 홈을 내야 한다. 어르신들은 그걸 너무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해낸다. 잘라낸 양쪽 잔가시 부스러기는 한쪽에 가지런히 놔둔다.
이번엔 몸통만 남은 갈치의 줄기 뼈와 살을 분리한다. 토막 난 두꺼운 쪽 단면의 위쪽 살판과 뼈 사이를 젓가락 끝으로 살짝살짝 들춰 틈을 내는 게 열쇠다. 일단 틈새가 벌어지면, 한쪽 젓가락을 그 사이에 넣어 주르륵 뒤쪽 끝까지 통과시키면 위쪽 살판이 온전하게 분리된다. 아래 살판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 위아래 살판과 가운데 줄기 뼈가 완전 세 부분으로 분리된 것이다.
통통한 살집을 직사각형으로 길쭉길쭉하게 떼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살집을 다 먹은 뒤엔, 맨 처음 떼어낸 잔가시 무더기를 조금씩 입에 넣어 혀로 살살 굴려가며 발라먹고 뱉는다. 약간 우러나오는 갈치 살 즙과 잔가시에 붙은 여린 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르신들은 추려낸 줄기 뼈에 붙은 살도 능숙한 혀 놀림으로 싹싹 발라먹는다.
갈치는 긴 칼을 닮았다. 옛사람들이 ‘칼치’나 ‘도어(刀魚)’라고 부른 이유다. 도(刀)는 ‘외날 칼’이고, 검(劍)은 ‘양날 칼’이다. 갈치는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머리를 세운 상태로 꼿꼿하게 헤엄친다. 바닷 속에서 머리를 위쪽으로 하고 있어, 마치 사람이 서있는 것 같다. 물론 간혹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W자로 헤엄치지만 나름대로 자존심이 있다. 역시 갈치는 옛 어르신들이 가시 발라 먹던 것처럼 살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서울 남대문시장 숭례문수입상가 입구에 들어서면 매콤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난다. 갈치조림골목 냄새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칼칼하게 조린 갈치국물, 매운맛과 달착지근한 맛이 깊게 어우러진 조린 무. 살강살강 깨물어지는 고소한 갈치 살. 매콤한 국물에 비벼 먹는 밥맛…. 골목은 늘 만원이다.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의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남대문시장 골목에는 갈치조림식당이 10여 군데 있다. 길게는 40여 년에서부터 짧게는 20여 년까지 됐다.
중앙식당 02-752-2892, 희락식당 02-755-3449, 왕성식당 02-752-9476, 넝쿨식당 02-777-6218, 전주식당 02-756-4126, 호남식당 02-775-5033, 부여식당 02-595-9854, 동화식당 02-752-9940, 동해식당 02-773-2497, 우리식당 02-752-5153, 내고향식당 02-752-7954
맛은 어느 식당이나 엇비슷하다. 차이라면 매운 정도와 어느 바다에서 잡은 갈치를 쓰느냐는 것. 거의 제주 부산 여수 앞바다에서 잡은 갈치를 쓴다. 국물은 대부분 쌀뜨물을 쓰지만 드물게 멸치나 표고버섯을 쓰는 집도 있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의 양념에 갈치를 토막 내어 센 불에 끓인다. 냄비 밑바닥에 깔린 무가 약간 탈 정도로 조린다. 생김에 양념조선간장 찍어 먹는 밥맛도 일품이다.
갈치는 여름 가을에 먹는 것이 으뜸이다. 갈치회가 맛있지만 쉽게 상해서 여간해선 제맛 보기 힘들다. 제주는 갈치국이 일품이다. 야채를 넣고 멀겋게 끓이지만,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맛을 낸다. 서귀포 네거리식당(064-762-5513) 갈치국은 얼큰하고 담백한 것으로 소문났다.
요즘 밥상머리에서 깨질깨질 젓가락질 하는 아이들을 보면 속이 터진다. 갈치 새끼인 풀치도 그렇게 나부대거나 산만하지 않다. 가시 많은 생선은 어른들이 발라주지 않으면 아예 손을 대지도 않는다. 발라준 살조차 어쩌다 가시가 씹히면 신경질을 낸다.
모두 어른들 책임이다. 아이들 밥상머리 교육보다는 돈에만 매달린 탓이다. 요즘 너도나도 펀드와 주식계좌가 반 토막(고등어계좌)을 넘어 갈치토막이 됐다고 아우성이다. 갈치는 한 마리 자르면 3, 4토막 나온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