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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고교 35년째 한국 수학여행 오는 까닭은?

입력 | 2009-04-24 03:02:00


후지타 지벤학원 이사장 “식민통치 속죄하고파”

“한-일 진정한 친구되기 위해 청소년 교류 필요”

올해로 35년째. 1975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본 지벤(智辯)학원 산하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학생만 모두 1만7777명에 이른다. 올해도 609명의 학생이 한국을 방문해 23일 오후 한양대에서 한양대부속 공업고등학교와의 자매결연 3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지벤학원이 평생에 한 번뿐인 고교 수학여행 장소로 한국을 고집해온 데에는 학원 설립자이자 이사장인 후지타 데루키오 씨(78·사진)의 ‘속죄’ 의지에 따른 것이다.

후지타 이사장은 휠체어를 탄 채 행사장에 나타났다. 한국에 와 자매결연 3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서 있었던 입학식과 졸업식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고 건강관리를 했다. 한국에 오기 직전 폐가 나빠져 호흡기의 도움을 빌리기도 했다. “내일 바로 입원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오늘 이 자리는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오늘이 35년 속죄의 시간을 매듭짓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후지타 이사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 35년의 일제 통치를 속죄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1년에 한 차례씩 일본 학생들을 이끌고 한국에 오는 게 속죄의 길이었다. 그는 “아픈 과거를 씻고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 교류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었다.

1945년 광복 당시 그는 14세 소년에 불과했다. 군대에 있었던 것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와서 살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사코 속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서 백제 문화가 일본 아스카 문화의 뿌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일본 제국주의 때문에 일본 문화의 뿌리였던 한국과 멀어지게 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자 상처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976년 두 번째 한국 수학여행 때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때만 해도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이 꼿꼿하게 도열해 환영식을 열어줬다. 지금은 오히려 한적한 시골 와카야마 현에서 온 일본 학생들이 서울의 고층빌딩을 보고 놀란다.

35년간 수학여행지로 한국을 고집하면서 벽에 부닥친 적도 많았다. 독도문제, 일본의 역사 교과서 파문 등 한일 관계가 갈등으로 치달을 때는 학부모들이 한국 여행을 반대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퍼질 때는 “꼭 한국에 가야 하느냐”는 불만도 있었다.

지금은 입학 전부터 한국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한국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석굴암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은 와카야마고 이케다 나쓰코 양(17)은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일본인을 미워할 거라 생각했지만 ‘곤니치와’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후지타 이사장은 35년간 이어온 한국 수학여행의 전통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한일 청소년들도 저처럼 민족을 초월해 마음을 열 수 있는 한국인 친구들을 귀중한 자산으로 갖게 되길 바랍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