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횡성-인제 이어 어제 양구에서 또 발생
인터넷서 만나 모의… 이달에만 12명 숨져
“황금연휴 앞두고…” 도내 민박-펜션업계 술렁
이달 들어 강원도에서 네 번째 동반자살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지역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8일 정선을 시작으로 15일 횡성, 17일 인제, 23일 양구에 이르기까지 네 번의 동반자살로 모두 12명이 숨졌다. 특히 네 건 모두 연탄가스를 이용한 데다 문이나 창틈을 테이프로 밀봉한 점 등 수법이 앞선 사건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후속 동반 자살도 우려되고 있다.
○ 또다시 발생한 동반 자살
23일 오전 11시 반경 양구군 양구읍 웅진터널 인근 국도 46호선 교차로에 주차된 싼타모 승용차에서 박모 씨(19·여·강원 춘천시)와 한모 씨(22·서울) 등 남녀 4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산불감시원 윤모 씨(39)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윤 씨는 “산불감시 활동을 하던 중 한 주민에게서 남자 한 명이 길에 쓰러져 있다는 말을 듣고 가 보니 도로변 승용차 옆에 남자 1명이 의식을 잃은 채 있었고 차 안에 3명이 더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차 안의 박 씨는 이미 숨져 있었다. 차 밖에 쓰러져 있던 한 씨를 포함해 생존한 3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명은 중태다. 다른 한 명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차 안에 타다 남은 연탄이 놓여 있었으며 창문 틈에는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고 밝혔다.
차 안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죽는다’ ‘죽어야겠다’는 쪽지가 발견됨에 따라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들의 연령대와 주거지가 서로 다른 점으로 미뤄 인터넷 자살 관련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이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 인터넷 동반 자살 확산
동반 자살이 발생한 각 지역의 경찰은 이들이 자살 관련 인터넷 사이트,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 만난 뒤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정선, 횡성, 인제에서 발생한 세 건의 일행이 서로 사전에 모의한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이들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찰은 17일 인제에서 숨진 지모 씨(47·강원 속초시)의 수첩에서 15일 횡성에서 숨진 김모 씨(26·경기 성남시)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김 씨는 8일 정선에서 숨진 김모 씨(43·서울)와도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횡성경찰서는 횡성의 모 펜션에서 숨진 4명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했다가 생존한 양모 씨(40·서울)와 이들이 만난 것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카페 운영자 정모 씨(21·경남) 등 2명을 자살방조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인제경찰서는 인제에서 숨진 3명이 한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실명이 아닌 ID를 사용해 ‘어떻게 죽으면 안 아프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등의 글을 올렸고 쪽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어떤 수단으로 하면 쉽게 죽을 수 있나’, ‘연탄가스가 자살하기에 무난하다’는 등 자살 방법과 장소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친분을 다진 후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선경찰서는 “정선에서의 사망자 가운데 신모 씨(35·서울)는 자살하기 며칠 전 모 대학병원에 시신 기증을 약속하는 등 자살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한 점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 강원 주민 뿔났다
강원도에서 동반 자살 사건이 연속으로 터지자 주민들은 강원도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숙박업소 등 지역 상인들은 “5월초 황금연휴를 앞두고 있는데 모처럼의 관광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콘도, 펜션 등 관광지 주요 숙박업소들이 대부분 예약 완료된 상황에서 예약 취소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 이성환 씨(41·강원 춘천시)는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가 동반자살 최적지로 인식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며 동반 자살 예방을 위해 관계당국이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강원도관광협회 임성규 부장은 “불황기에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계속 터져 안타깝다”며 “아직 숙박업소들에 대한 예약 취소 사태 등은 없다”고 말했다.
춘천=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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