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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유한양행

입력 | 2009-04-25 02:54:00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연구원이 약품 실험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 인력이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기술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사진 제공 유한양행


“기업이윤 환원” 사회공헌 공들인 ‘신뢰 83년’

적자 -파업-오너 없는 3無경영

사원 모두 주인의식 똘똘뭉쳐

유한양행 임직원들은 회사에 ‘3무(三無)’가 있다고 흔히 말한다. 이들이 꼽는 유한양행의 ‘3무’는 바로 ‘적자’, ‘파업’, ‘오너’ 등 세 가지. 유한양행이 83년 동안 제약업계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지금도 매출액 5957억 원으로 업계 2위를 지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유한양행은 1926년 창립 이후 생산 활동이 완전히 멈췄던 6·25전쟁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1975년 국내에서 선도적으로 노조를 만들었지만 아직 파업 경험은 없다.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신념에 따라 1969년 도입한 전문경영인 제도도 별다른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사원 모두가 주인…전문경영인 체제 정착

유한양행은 국내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기업으로 꼽힌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잇따라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지만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오너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특히 주식의 사회 환원이 전문경영인 제도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김윤섭 유한양행 사장은 “1971년 유일한 박사 타계 후 유한양행 지분의 30%가 공익 재단인 유한재단과 유한학원, 보건장학회 등으로 환원됐다”며 “개인 대주주 없이 사회 전체가 회사 주인이라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부심이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일한 박사는 생존해 있을 때부터 여러 공익재단에 주식을 기증했다. 그때마다 의료복지 및 교육사업을 위해서만 주식을 팔 수 있도록 단서를 달아 스스로 유한양행을 완전한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었다.

창업자의 사상과 철학을 계승하는 전문경영인을 선발하는 ‘유한양행 인사 시스템’도 전문경영인 제도의 정착을 도왔다. 유한양행을 연구해 온 박광서 순천향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유한양행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회사 이념을 훼손하지 않을 사람만 최고경영자로 뽑았고, 이는 전문경영인 정착에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책임감 부족이나 사리사욕 등으로 국내에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일부 비판받는 만큼 유한양행의 인사 시스템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사원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공동운명체’ 정신도 유한양행의 발전에 기여했다. 김 사장은 “입버릇처럼 우리 회사에 오너는 없지만 주인은 (전 직원) 1500명이라고 강조한다”며 “일반적으로 경영진과 직원 사이를 ‘노사관계’라고 하지만 우리는 ‘노노(勞勞)관계’”라고 말했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여금 반납이나 ‘1시간 더 일하기’ 운동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유한양행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 장수기업의 핵심 요건은 신뢰

유한양행은 가장 큰 가치로 ‘신뢰’를 꼽았다. 이 회사가 매년 배당금의 3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속적인 사회공헌에 나서는 것도 사회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다. 김 사장은 “신뢰가 무너지면 더는 회사가 유지될 수 없다”며 “영속적으로 발전하는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과 소비자, 직원의 신뢰를 동시에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유한양행은 ‘시장에서 가장 좋은 제품만 만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시장과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매년 연구개발(R&D) 인력을 증원해 현재 전체 인력 중 20% 이상을 차지한다. 매출액 대비 R&D 예산 비중도 업계 평균(3∼4%) 이상인 5∼6%대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 불신의 원천인 납세 문제도 철저하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은 것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3대 창립정신을 강조했다. 1960년대 초 자유당 정권의 정치 헌금을 거부하며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의혹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김 사장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철저한 미래 예측을 하며 기업을 경영한 것이 장수 기업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유한양행 약사

―1926년 유일한 박사가 유한양행 설립

―1936년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 공장 건립

―1970년 유한킴벌리 주식회사 설립

―198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합작해 유한화학공업 주식회사 설립

―1983년 한국얀센 설립

―1998년 자체 개발한 면역억제제 고형분사기술 미국에 수출

―2007년 자체 신약 레바넥스 시판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