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활짝 웃는다.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내려가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기업들은 환율이 오를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어야만 했다. 이들이 키코에 손댄 것은 2006년 이후 원-달러 환율 하락 때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서 생기는 손실, 즉 환차손(換差損)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작년 초부터 외환 및 주식시장 불안으로 환율이 급등해 키코 가입 기업들이 많게는 수백억 원대의 손실을 보았다.
▷피해 기업들은 은행 정부 국회를 거쳐 법원에 구제를 호소했다. 예측 범위 이상으로 환율이 올랐으므로 계약을 깨달라는 요구였다. 24일 서울중앙지법은 10건의 가처분신청에 대해 결정을 내리면서 일부는 기업 편을, 일부는 은행 편을 들어주되 계약 자체는 유지시켰다. 전문가인 은행은 기업의 능력과 여건에 맞는 거래를 제안해야 하고, 키코 같은 고위험상품의 잠재적 위험 요소를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반면 돈을 벌 욕심에 과도한 계약을 한 기업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이번 결정은 계류 중인 67건의 가처분신청과 100건가량의 본안소송 처리에서 기준이 될 수 있다.
▷키코 소동은 연구과제가 될 만하다. 은행은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불완전 판매를 했고, 기업은 내용도 모른 채 투기적으로 계약을 맺었으며, 감독당국은 제때 규제하지 못한 잘못이 겹쳤다. 은행이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이용해 거래 기업에 키코 가입을 압박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는 키코 사태에 대해 ‘사적 계약이므로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가 피해가 증폭되자 피해 기업에 대출을 알선하는 늑장대처를 했다.
▷키코 피해를 투자자에게 제때 알리지 않은 기업은 소송을 당했다. 작년 3분기 175억 원의 키코 손실을 입은 건설중장비부품업체인 진성티이씨의 경우다. 이 회사는 분기보고서에 흑자로 결산 처리했다가 한 달 뒤 적자로 정정했다. 며칠 만에 주가가 반 토막이 나자 투자자가 집단소송을 냈다. 증권집단소송은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다. 말썽도 많고 골치도 아팠던 키코 소동은 은행 기업 감독당국 모두에 쓰디쓴 교훈을 남겼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