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사진제공·SBS
정선희. 사진제공·SBS
8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정선희 "남편 떠난 후 삶" 고백
남편을 잃었다. 곧이어 친구도 잃었다. 졸지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그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결국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기를 8개월…. 오랜 겨울잠을 끝내고 그가 인생의 두 번째 봄을 맞으려 한다.
정선희(37)에게 지난 8개월은 자신이 살아온 날보다 더 길었다. 고통은 짊어질 수 없을 만큼 무거웠고 아픔은 터널처럼 깊고 길었다. 지난해 9월 남편 안재환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절친한 동료 최진실마저 잃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고, 그는 "죽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로부터 8개월 뒤, 그가 SBS 라디오 '정선희의 러브FM'으로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딱따구리 웃음소리를 흉내 내는 대신 숨죽여 울었고, 화려한 언변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사연을 읽었다.
방송을 통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을 즈음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정선희를 다시 만났다. 봄바람처럼 그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그의 기도 주제는 '감사'. 그는 "복귀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설레고 떨린다.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이 망설이고 걱정했는데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아 감사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동네 주민을 만나면 그가 먼저 인사하고 웃었다.
"'선희씨, 힘내요!'라는 메시지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져요. 지난 8개월 동안의 세상과 어제, 오늘의 느낌이 다 달라요. 감사해서 울다가 웃다가 그러죠. 여전히 행동 하나, 말 하나가 조심스럽지만 많이 편안해졌어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해요."
정선희는 그동안 교회를 다니는 것 외에는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했다. "쉬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나기도 했다. 4월 초 방송복귀가 결정된 후에도 심적인 부담을 느껴 며칠 동안 앓았다. 계속된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도 자신의 말 몇 마디가 다른 의미로 비칠까 두렵다며 고사했다. 그때마다 그를 일으킨 건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그는 "가족들이 나로 인해 가슴앓이가 심했는데도 '너보다 더 험난한 일을 겪은 사람도 이겨낸다.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라며 위로해줬다"고 말했다.
"얼마 전 오빠가 10년 만에 아이를 얻었어요. 모두 말렸는데 포기하지 않더니 그처럼 좋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조카를 처음 안던 날 제가 말했어요. 고모가 험한 길 다 닦아놓았으니 씩씩하게만 자라달라고…. 조카에게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멋진 고모가 돼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는 첫 방송 주제를 '시작'으로 정했다. 첫아이를 얻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여행, 첫 키스 했을 때 등의 사연을 소개하던 그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아픔과 상처가 있기에 시작의 무게가 다르지만 처음 방송 데뷔했을 때처럼 설렌다"면서 한숨을 몰아쉬던 그는 "다시 마이크 앞에 앉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눈물을) 참고 싶었는데 '다시 돌아왔구나,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는 동안 때때로 모퉁이를 만난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골목길을 걷다 보면 그 끝에 모퉁이가 보이잖아요. 때론 장바구니를 든 엄마의 모습이 나타나고 때론 찌릉찌릉하고 자전거가 불쑥 나타나기도 하죠. 그래서 모퉁이를 보면 설레기도 하고 경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파른 골목길을 힘겹게 올라와 또다시 모퉁이를 도는 지금,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두렵지만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모퉁이 너머에 봄 햇살이 비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정오의 희망곡'으로 복귀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선희는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처럼 쉽냐.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정선희의 러브 FM'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심심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제게는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어요. 제 이름을 건다는 것…, 누군가 저를 믿고 맡긴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많은 부분을 누리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행복과 기쁨이 손가락 사이로 하나 둘 빠지면서 그동안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됐어요."
하지만 여전히 안재환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와 시집 사이의 갈등은 풀리지 않은 상태. "애도하는 시간이 짧은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MBC ‘생방송 오늘 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나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냐.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역시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다.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8개월이 짧은 기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루가 1년 같았어요. 숨이 막혔죠. 얼마나 오래 애도해야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답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대로 있으면 영원히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았어요. 죽을 때까지 주홍글씨처럼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상처를 마냥 싸매서 곪게 하는 것보다 바람 쐬주면서 치료하고 싶어요."
그는 웃음을 줘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워했다.
"배우라면 이 삶의 무게가 연기로 나오고, 가수라면 노래에 아픔을 담을 텐데…. 직업이 개그맨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잖아요. 혹시 그 모습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봐 마음이 쓰여요. 지금 제 짐가방 안에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과 갈증을 풀어줄 물병이 있어요. 이것들을 나누면서 살다 보면 한 사람에게라도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먼 훗날 사람들이 '정선희다워, 역시 정선희야, 정선희니까' 하고 저를 평가하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뒤 그가 먼저 기자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김수정 여성동아 기자 s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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