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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이병기]경제학의 지적 파산

입력 | 2009-04-26 18:09:00


2010년7월17일. 경제학자들의 비밀회합이 모처에서 열렸다.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 사망 220주년이지만 추모를 위한 자리가 아니다. 밥그릇을 지키려는 비상대책회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나온 '경제학 무용론(無用論)'이 확산돼 "경제학이 점성술과 뭐가 다르냐"는 말까지 나오자 마련된 자리다. 경제학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불태우는 집회까지 등장했다.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고백 할까요" 노구를 이끌고 사회자로 단상에 오른 폴 사뮬엘슨 MIT 석좌교수의 발언에 회의장은 순간 정적에 빠져들었다. 40년 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고 현대 경제학을 확립한 그의 말이기에 더욱 울림이 컸다.

"하이에크, 프리드먼으로 이어지는 시장근본주의자들 때문에 위기가 온 건데 왜 모든 경제학자가 비난을 받아야합니까" 미 콜롬비아대 스티글리츠 교수가 반발하고 나섰다. 서브 프라임 위기는 1930년 대공황이후 유지해온 은행에 대한 규제를 다 풀어주면서 온 것이라는 그의 주장이었다. 신자유주의의 본산(本山) 시카고대 출신들이 즉각 이번 위기는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 돈을 너무 많이 풀어 발생한 전형적인 '정부실패'라며 반발했다. 사람들은 그린스펀을 찾았지만 이런 비판을 예상한 듯 그는 모임에 나오지도 않았다.

누군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마저 180도 다른 해법을 제시하며 충돌하다 보니 대중들이 경제학을 불신하는 것 아니냐. 최소한 대중 앞에서는 논쟁을 자제하고 수학으로 포장된 논문으로 토론을 하자"고 중재를 섰지만 논쟁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때 물리학 박사출신으로 골드만 삭스 전무로 일했던 이매뉴얼 더만이 일어섰다. 그는 수학과 컴퓨터로 무장, 금융공학을 발전시킨 퀀트(Quant)의 대부. "경제학에 모티브를 제공한 물리학도 뉴턴 역학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한 지 오래다. 이제 경제학도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한 은행가의 발언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흥, 냉전이 끝난 후 쓸모없어진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에게 경제학을 가르쳐 월가에 취직시켰더니 누구를 훈계하는 거요. 자신도 이해를 못하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바로 당신들 퀀트들이니 조용히 하시요"

논쟁에 끼지 못하던 한국에서 온 학자가 일어서 "스승들마저 이렇게 싸우면 우리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냐. 학자들이 동의하는 공통분모를 찾아 교과서를 다시 써달라"고 호소했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한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만도 "경제학도 진화생물학, 복잡계론, 뇌과학 등 인접 학문들이 이룩한 성과를 받아들여 열린 경제학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거들었다. 모임은 어느덧 새로운 교과서를 쓰기위한 1박2일간의 토론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이론은 거의 없었고 결국 교과서를 만들 수 없었다.

반성문 한줄 없이 선진국 경제학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가고 있다. 그들을 스승으로 모셔온 한국인에게는 허망함, 억울함, 내비게이션을 잃어버린 듯한 복잡한 느낌을 준다. 열린 경제학의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며 가상의 상황을 적어봤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