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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암기는 단순 지식일 뿐인가?

입력 | 2009-04-27 02:57:00


폭넓은 배경지식 저장돼 있어야 다양한 관점 - 사고도 가능

암기‘입력’없는 창의력‘출력’ 가능할까?

○ 생각의 시작: 암기는 단순 지식일 뿐인가?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조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국어(상), ‘기미독립선언서’ 중에서]」

이 예시문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글이다. 원문은 대부분이 한자로 적혀 있어 읽기도 힘들다. 그래서 교과서에는 한자 옆에 한글로 음을 병기하고 있다. 하지만 음을 병기해준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이 부분이 시험 범위에 들어가면 두려워할 정도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는 학생들이 요즘은 암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수능이라는 입시제도가 만들어 낸 학습 경향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한다. 수능 이전에는 학력고사라는 시험제도가 있었다. 지나친 암기 위주의 교육이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현행 수능 제도로 바뀌면서 암기 중심보다는 창의성 중심의 시험제도로 바뀌었다. 그러면 수능은 충분히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일까?

현재 고등학생의 학력 수준을 보면 일부 학생을 제외하곤 많은 학생이 상식이 되어야 할 ‘기본’에 취약하다. 한 사람이 기억하는 배경지식은 그 사람이 세계를 보는 ‘눈’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의 경우 머릿속에 기억된 배경지식이 없다 보니 수능에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암기는 창의성과 배치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암기되지 않은 지식은 사실 무용지물이다. 물론 이해되지 않는 단순 암기는 무용지물일 수 있다. 또한 끊임없는 독서에 의해 나름의 사고력이 갖추어진 경우에는 개별적 사실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나름의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 어디에 무슨 얘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다시 찾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세계를 보는 눈은 우물 안 개구리의 눈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실상이다.

○ 다른 생각: 창의성보다 암기가 바람직한가?

창의적 사고는 그야말로 인류의 발전을 담보해 내고 현재의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사고력임이 분명하다. 창조가 없는 상황은 ‘답보’이며 그것은 발전이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창의적 사고라는,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덩어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창의적 사고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바탕인 다양한 사실에 대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창의성과 암기의 양자택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례로 수능 언어영역에서 점수가 낮은 학생들이 문제풀이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경우 장기적인 학습에도 성적이 변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학생들의 학습관에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관점은 없다. 누군가 학교교육은 짧은 시간에 많은 지식 습득을 가능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생에게 이러한 장점은 찾아볼 길이 없는 것 같다.

○ 덧붙이기: 논술적 사고는 무엇으로 기르는가?

논술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비판적 사고나 창의적 사고도 역시 기본 배경지식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세상을 창의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을 익힐 필요가 있다. 한 번 보기만 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시각을 갖출 수 없다. 나아가 창의적 사고도 있을 수 없다.

수능과 논술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은 상관관계가 깊다. 물론 둘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갖추지 않는다면 수능 점수도 논술적 사고능력 배양도 언제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뿐이다.

유영권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