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부실 부동산’이 늘어나면서 건설회사나 금융업체의 부실자산이 급증하게 된다. 이처럼 부동산과 같은 자산가격의 급락에 의해 발생하는 위기를 ‘자산디플레이션 위기’라고 한다. 자산디플레이션 위기는 부동산시장의 위기인 동시에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대출해 준 금융회사의 위기로 나타나게 된다.
현재 미국의 경제위기는 전형적인 자산디플레이션 위기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한 유동화제도 자체가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주택 건설자금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중 상당 부분을 부동산유동화제도를 이용해서 조달했으나 미분양아파트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과정에서 이런 유동화제도가 위기를 확산시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유동화제도는 상품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편입되는 부동산 자산의 가치만으로 충분히 투자나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따라서 위험이 발생하더라도 부실의 문제는 해당 투자로 한정돼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원칙과 달리 채무인수나 연대보증 등의 지급보증이 요구된다. 미국처럼 부동산 자산평가나 대출원칙이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런 운영상의 문제점은 투자나 대출상품 자체에 한정되지 않고 부실이 확산되게 만든다.
그러나 운영상의 문제점과 원리상의 유용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유동화제도가 갖는 운영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위기를 해소하는 데 있어서 유동화제도의 유용성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도입된 리츠(REITs)나 자산유동화증권(ABS)과 같은 부동산유동화제도는 지금과 같은 위기국면에 민간자금을 활용해 부동산에 투자하고 부실자산을 빠르게 처리할 유용한 수단이다.
현재 공공부문이 1만 채 이상의 미분양아파트를 사들였지만 시장에는 여전히 16만 채가 넘는 미분양아파트가 존재한다. 미분양아파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구조조정 리츠가 조성되고 있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방안도 내놨다. 매입가격이나 지원방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동화제도를 활용해 부실문제를 해결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미분양펀드가 성공하려면 편입한 부동산의 가격 회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편입한 부동산을 활용해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해야 한다. 단순히 싼 가격에 사들여 가격이 회복되면 이익을 환수하려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민간주택 임대산업도 육성해 장기적으로 다양한 시장참여자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자산디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들의 부동산시장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를 잘 활용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상영 부동산114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