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려고 합니다. 부디 왕림하셔서 축복해 주십시오.’ 흰색 카드에 이런 소박한 글귀가 적힌 결혼 청첩장은 요즘 받아보기 어렵다. 최근 유행하는 청접장은 봉투부터 카드 디자인과 재질이 고급스럽고 세련미가 넘친다. 카드를 묶은 리본은 호사스러울 정도다. e메일 청첩장에는 미리 촬영한 웨딩사진과 동영상, 두 사람이 맺어진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초대의 글을 휴대전화로 보내주는 문자 청첩장 서비스업체도 성황을 이룬다.
▷청첩장을 주고받고 성의껏 축의금을 내는 것은 상부상조의 정신이 깃든 미풍양속이다. 경조사를 치르느라 목돈이 아쉬울 때 서로 도와주는 계(契)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첩장을 받았을 때 ‘축의금 고지서’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사업이나 직무와 관련해 축의금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상대한테서 청첩장을 받았을 때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데다 결혼식 청첩까지 몰리는 5월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서민과 직장인들에게는 ‘잔인한 5월’이다.
▷나근형 인천시교육감이 각급 학교 교장 교감과 각계 인사 수천 명에게 아들 결혼식 청첩장을 배포했다. 게다가 교육청 총무과 직원 수십 명을 결혼식장 안내와 축의금 접수원으로 동원하려 했다가 빈축을 샀다. 문제가 되자 시교육청은 “청첩장을 누구에겐 돌리고 누구는 뺄 수 없어 전체 교장 교감에게 일괄적으로 우송했다”고 해명했다. 군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뒤늦게 논란이 일자 어제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접수는 하지 않았다.
▷2003년 제정된 공무원행동강령에는 ‘일정한 액수 이상의 경조금을 주고받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경조금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선출직 공직자들과 정무직 임용직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조사 때 축의금 조의금을 받지 않는 관행이 정착돼 가고 있다. 공직자 가정이 아니어도 경조사 때 봉투 접수대를 만들지 않는 여유를 보여주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천시의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이 그런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관할 학교에 일괄적으로 청첩장을 배포할 일은 아니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