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으로 입원했던 진강이(8)가 사망한 것은 이달 1일. 뇌사 상태가 된 지 1년 만이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부모는 복사한 진료기록부를 들고 망연자실했다. 나근섭 씨(자영업·충북 청주)는 “아이가 사망할 때까지 ‘괜찮다. 생각보다 뇌손상이 심하지 않다’고만 들었다”며 “병원은 내 아들이 뇌사인 사실을 1년씩이나 감춰 왔다”고 했다.
진강이는 지난해 3월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 그러나 그날 밤 먹은 것을 모두 토하며 충북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음 날은 상태가 좋았다. 일반 병실로 옮겨 TV도 봤다. 오후 11시경 경련이 시작됐다.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지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수련의가 병실로 와서 응급처치를 해줬다. 그러기를 4시간. 진강이는 움직임이 거의 없어졌다.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후부터는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호흡해야 했고 미동도 없었다. 그런 상태로 1년이 지났다.
사망한 날 담당 의사는 진강이의 침대 맡에 서서 “좋은 데 가라. 너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장례식장에는 주치의가 와서 사죄했다. 병원은 장례식 비용도 마련해 줬다. 그러나 나 씨에게는 병원의 모든 행동이 ‘악어의 눈물’로 보일 뿐이었다. 병원 차원의 원인규명 노력은 보이지 않고 슬쩍 덮고 지나가려고만 하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 측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기 전까지 의료사고 여부를 따져보는 위원회를 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환자 측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병원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씨는 아들이 경련을 일으킨 날 밤에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심각한 뇌손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뇌수막염이 심해 경련이 일어나면 항경련제를 투입하면서 호흡을 도와야 하는데 처치가 늦을 경우 뇌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다. 그는 수개월이 지나도록 아들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도 몰랐다. 그냥 ‘깨어날 수 있다’고만 들었다. 5개월이 지난 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의사에게 진료기록부를 보여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때 처음 “밤에 처치가 늦었다. 뇌사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과 의료진은 이에 대해 함구했다. 기자가 진강이를 담당했던 의사에게 전화를 걸자 담당의는 “그것과 관련된 것은 전혀 이야기할 게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병원 측은 “담당의사가 ‘잘못이 없다’고 했다”는 말뿐이다.
나 씨는 “병원이 일단 환자 가족을 조용히 있게 한 뒤 슬쩍 넘어가려고 장례를 치러주는 등 날짜만 끌고 있다”며 분노했다.
병원 측은 “회피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면서도 모든 질문에 대해 “소송이 시작되면 답하겠다”고만 했다. 왜 부모에게 아이 상태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는지, 심지어 응급처치를 한 수련의가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에 대해서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법정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을 가족에게는 왜 못한다는 것인지….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