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신나는 공부]‘유혹의 계절’ 5월… 데이트하러 가는 우리 아이

입력 | 2009-04-28 02:55:00


화창한 봄… 중간시험은 끝나고…‘커플탄생 속출’

《이성교제가 금기시 됐던 엄마 세대와 달리 요즘 10대는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커플을 당당하게 공개한다. ‘빼빼로 데이’(11월 11일), ‘투투 데이’(이성친구와 만난지 22일 되는 날)처럼 갖가지 기념일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너희 딸이 누구랑 사귄다더라” 또는 “너희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목걸이를 사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해장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걸 봤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뒤늦게 전해 듣고는 자녀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엄마도 있다.》

노는 학생만? 상위권 사이에서도 이성교제 활발

맘에 들면 적극 구애…“우린 커플”주위에 당당히 공개

‘△△데이’마다 용돈털어 선물…‘1년 기념 키스’ 의식도

10대의 이성교제 문화, 엄마들은 알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과연 그럴까?

○모범생은 공부만 한다고?

한때 이성교제는 ‘노는’ 학생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회장 커플’ ‘반장 커플’ ‘방송반 커플’처럼 상위권 학생들의 이성교제도 활발하다.

학급임원 수련회,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수업에서 교제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

전교 10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하는 고1 양모 군(17·제주 제주시 애월읍)도 중2 땐 전교에서 유명한 ‘모범 커플’이었다.

당시 전교 7등이던 양 군이 전교 1등이던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전교 50등 이상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방과 후 수업시간에서였다.

양 군은 친구의 친구를 통해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 낸 뒤 문자메시지로 호감을 표시했고, 둘은 하루 20∼30분씩 인터넷 채팅을 하며 좋은 감정을 키웠다.

교내에선 전교 석차를 다투는 선의의 라이벌로 경쟁하고, 학교 밖에선 다정히 손을 잡고 학원에 다녔던 양 군 커플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서로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기간엔 ‘문자 보내지 말기’ ‘인터넷 채팅 금지’ 같은 규칙을 정하고 철저히 지켰다. 늘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여자친구는 양 군에겐 긍정적인 자극이 됐다.

양 군 커플은 그 1년 뒤 깨졌다. 여자친구가 먼저 “공부에 집중하자.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해 헤어진 것. 양 군은 “처음엔 자존심 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자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정미경 빨간펜 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의 미술 수행평가를 도와주고,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위해 수학시험 예상문제를 뽑아주는 식으로 이성 교제의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상위권 학생커플’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성교제의 꽃, 이벤트

고3인 최모 군(18·인천 계양구)은 “TV 드라마에서 여자주인공이 하고 나온 목걸이를 가지고 싶다”는 여자친구를 위해 2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간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당이 지급되는 데다 식당(시급 3700원)보다 시급을 600원이나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군은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처럼 만난 지 100일 되는 날엔 여자친구 집 근처의 공원에 촛불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여자친구에게 장미꽃 100송이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남녀공학에 다니는 중3 허모 양(16·전남 순천시)은 “음악실, 미술실, 과학실이 모여 있는 학교 별관은 선생님과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 커플들이 기념일을 자축할 때 자주 이용하는 장소”라면서 “풍선, 꽃, 양초, 플래카드 등으로 장식해 놓고 기념사진을 찍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막 사귀기 시작했거나 사귄 지 1년 이상 된 ‘장수 커플’은 친구들 앞에서 기념으로 ‘공개 키스’를 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고 허 양은 말했다.

○이성교제의 그늘

이성친구와의 이별은 아직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중고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고1인 장모 양(17·서울 송파구 장지동)도 이별을 통보해온 남자친구 때문에 6개월 동안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장 양의 내신성적은 한 학기 사이 평균 15점이나 떨어졌다.

장 양은 “이성친구에 대한 환상이 깨져 지금은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지만 처음엔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있다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성친구와의 이별을 잘 극복하지 못한 일부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탈선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양 군은 “목표가 확실하고 공부에 욕심이 있는 학생들은 여자친구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자기 생활에 전념하지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거나 일부러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방황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