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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핑퐁게임에 대우차 비틀비틀

입력 | 2009-04-28 21:07:00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 출품된 '라세티 프리미어(수출명 시보레 크루즈)'에 대해 해외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 모델은 GM대우자동차가 디자인, 개발, 생산을 도맡았다. 유럽과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들은 "GM을 구할 차"라는 평가를 쏟아냈다. 지난달 전북 군산항을 출발한 라세티 프리미어는 최근 유럽에 도착해 판매에 들어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GM대우차에 대한 지원에 대한 미국 정부-GM 본사-한국 정부-산업은행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GM의 구원자'로 칭송받던 GM대우차는 좌초 직전의 상황이다. GM대우차를 둘러싼 한미간 신경전이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미 간 벼랑 끝 '핑퐁게임'

GM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레이 영은 27일(현지시간) 한국 기자들과 만나 "한국 산업은행과 정부가 GM대우에 먼저 지원하지 않는다면 GM 본사로서는 지원 방안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GM대우차에 대한 포기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에서는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의 선(先)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실 GM 본사도 현재로선 독자적인 지원 능력이나 수단이 없어 보인다. 본사가 파산 위기에 처한 데다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을 하면서 해외 투자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GM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산업은행의 태도는 단호하다. 산업은행 측은 28일 "GM의 지원이 전제되면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GM대우차에 이미 전달한 바 있다"며 "기존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더 이상 물러설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2월 말 GM대우차의 운전자금 지원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최소한 GM이 GM대우차의 미래를 보장하고 공동 지원 등에 대한 확약을 해야만 자금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기업에 국민 혈세를 지원하기엔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다.

한-미 간 '핑퐁게임'이 계속되면서 GM대우차는 국내외 판매 급감으로 당장 운전자금을 걱정하고 있다. GM대우차 관계자는 "이달 말이면 운전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차 1분기(1~3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수출액은 60% 넘게 감소했다.

5,6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선물환 계약 규모만 해도 1조2000억 원에 이른다. GM대우차의 만기 연장 요청에 채권단은 절반가량의 만기를 3~6개월 정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GM이 발표한 자구책에 딜러망 축소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은 GM 판매망에 의존해 수출을 하고 있는 GM대우차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제2의 쌍용자동차 사태 대비해야"

GM대우차는 GM의 글로벌 생산기지 중 경·소형차 개발 본부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오펠), 호주(홀덴)의 생산기지 등은 주로 중·대형차와 후륜구동차량 개발을 맡고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각국 자동차 기업들이 경·소형차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GM이 GM대우차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GM대우차가 GM의 다른 해외 생산 기지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알짜 물건'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GM 본사는 지원할 여력이 없고 미국 정부도 GM대우차에 돈이 흘러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GM이 중국 상하이자동차처럼 GM대우차 경영에서 손을 떼고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GM이 제3자 매각에 나설 수도 있지만 최근 세계 경제 상황에 비춰 인수자를 찾기 어렵고, 쌍용차와 달리 GM대우차의 '덩치'가 너무 크다는 것이 오히려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GM 측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라며 "판매의 90%를 차지하는 수출을 GM 판매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GM대우차로선 GM이 '나 몰라라'하면 정상화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