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자이툰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에 식겁했던 적이 있다. 아르빌 시내에 호송 작전을 나갔을 때다. 젊은 남녀가 벌건 대낮에 손을 잡고 다정히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연애하는 줄 알고 놀랐다. 현지 통역사는 저들이 동네 근처에 사는 젊은 부부 같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선 결혼 전에 남녀의 자유연애를 법적으로 금지한다. 만나고 싶어도 몰래 만난다. 특히 보수적인 동네에서는 낯선 남자와 몇 마디 말만 나눠도 여성을 즉결 처분(명예 살인)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성 위주의 전통 부족사회 관습이 남아 있어서다.
부모가 정해준 중매결혼이 일반적인 이라크에서 청년들은 자유연애를 갈망한다. 하루는 궁금해서 현지 고용인에게 자유연애에 대해 물어봤다. 후세인이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30대 초반인데 10년 전만 해도 자유연애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며 자기도 자유롭게 연애를 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국 군인에게서 듣는 한국의 자유로운 연애 풍속이 부럽다고도 했다.
기술교육대에서 만난 여학생은 하울레르대에 재학 중이었다. 그녀는 요즘 이슬람 문화권에도 개인의 취향과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가 젊은이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며 자기도 날이 어두워지면 남자친구와 몰래 데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떳떳하게 연애할 수 있는 한국이 부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얼마 전에 취업 포털에서 구직자 107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40.1%가 취업을 못 했다는 이유로 연인과 헤어진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른바 ‘백수’ 중 39%는 먼저 교제 중단을 선언했다고 한다. 중복응답을 허용하며 이유를 물었더니 △미취업 중인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일이 자존심 상해서(51.8%) △연인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라서(41.1%) △선물이나 데이트 비용이 부담돼서(21.4%) △취업 준비로 연애할 시간이 없어서(21.4%) △연인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등 자신을 무시해서(5.4%)라고 나왔다. 대부분 취업과 관련된 내용이다.
나와 함께 공부하는 형도 취업 준비 때문에 연애할 시간이 없고 상대방도 취업 준비로 바빠 얼마 전 헤어졌다고 한다. 한국도 연애하기 어려운 곳이긴 마찬가지다.
정병진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