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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열린 문화, 국경을 허문다]

입력 | 2009-04-29 03:02:00

네팔 몽골 이란 등 12개 언어로 된 1000여 권의 도서가 비치된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의 STX 다문화도서관 ‘모두’. 이란 출신 여성 메헤란도흐트 나미니 씨(41)가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어울려 책을 읽고 있다. 이훈구 기자


서울 이문동 다문화도서관 ‘모두’

“한국같이 이란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있습니다. 이란 4계절 아름다워요.”

이란 출신 여성 메헤란도흐트 나미니 씨(41)가 사진을 보여주며 이란의 4계절에 대해 설명하자 열심히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이란은 서남아시아 지역이어서 더운 날씨만 있는 줄 알았다”는 어머니들의 탄성과 “와∼, 벚꽃이다!”라는 아이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나미니 씨는 이란말과 한국말을 써가며 이란의 명절과 카펫, 유적지 등 다양한 문화를 소개했다. “이렇게 모국(母國)에 대해 소개하게 돼서 기분이 매우 좋고 자신감도 생긴다”는 그는 “한국에 온 지 9년이 지났지만 이란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 문화와 문화가 소통하는 공간

최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다문화도서관 ‘모두’. 지난해 9월 개관한 이 도서관은 165m²(약 50평) 정도의 작은 도서관이지만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네팔, 몽골, 이란 등 총 12개 언어로 된 도서 1000여 권이 소장된 알찬 도서관이다. 한 달에 1400명이 이용하고 2300권 정도의 책이 대출 목록에 오를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되는 도서관이기도 하다. 신간도 꾸준히 보충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우즈베키스탄, 칠레 등지에서 발간된 책은 이 도서관의 설립을 지원한 STX그룹 계열사인 STX팬오션에서 해외 네트워크를 가동해 한국으로 보내주고 있다.

방문객은 다문화가정의 어머니와 3∼6세 미취학 자녀들이 대부분. 아이들은 도서관이 놀이터인 양 책장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사귄 친구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어머니들이 한국말로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정도의 소음이 허락되는 도서관인 만큼 아이들은 자유롭게 친구들과 대화할 수 있다.

‘모두지기’라는 직함을 쓰는 문종석 대표는 “다문화도서관은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어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두에서는 서로의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연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나미니 씨가 참여한 ‘엄마나라 동화여행’이다. 도서관 개관과 거의 동시에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1주일에 2, 3회 정도 다문화 가정 이웃에게 출신 국가의 전래동화를 듣는 행사다. 동화를 읽어주는 사람들은 모국어와 한국어 두 개 언어를 함께 쓴다. 모국어를 스스로 통역하는 형식이다. 도서관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오늘처럼 이란 동화를 읽어준 날이면 이란어로 쓰인 책을 빌리거나 읽으려는 아이들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전혀 읽을 수 없는 말이지만 아이들은 낯선 글자를 익숙하게 접하고 그림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는 것이다.

○ 다문화 이웃에겐 정체성과 자신감을

동화 읽어주기는 아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려주는 교육 효과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모국어로 알려준 외국 출신 이웃은 ‘우리나라에 대해선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자신감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가정 자녀들도 ‘우리 엄마(아빠)가 한국말은 잘하지 못하지만 엄마(아빠) 나라 말은 누구보다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도서관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숙제를 봐주는 ‘멘터링’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외국 출신 이웃들이 아이의 육아나 교육을 한국어로 도와주는 것이다. 그 대신 문 대표는 도서관을 찾는 다문화가정 식구들에게 “반드시 출신 국가의 언어로 아이들과 대화하라”고 조언한다. ‘자신 있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이가 모국어를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은 다문화가정의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2∼4주에 한 번씩 모인 다문화가정 부부들은 서로 아이들 교육 문제나 다른 문화로 인해 생기는 부부간 충돌 등을 털어놓는다. 그리곤 그 해결책에 대해 토론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상대방 국가의 언어로 이름을 부르거나 사랑 표현을 하도록 하는 간단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문 대표는 “외국 출신 이웃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며 “다문화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다름’을 배우고 ‘내 나라’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도서관 운영의 목표”라고 말했다.

모두는 현재 경남 창원에 2호점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공업도시에 도서관이 빨리 들어서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규모의 도서관을 동네마다 만드는 것이 모두가 그리는 가장 큰 그림이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