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시대를 열다(1)
컬러TV-전자교환식 전화 도입
전자산업 발전 위해 물밑 추진
여론 반대-기업 이해 맞물려 난항
제4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자시대를 열어가는 데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전자산업과 TV, 통신수단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75년 미8군 AFKN이 “내년부터 컬러 방송을 시작한다”고 공표하자 우리나라도 컬러TV 방송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전자산업이 우리의 전략산업인 만큼 우리도 컬러 방송을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이 산업의 발전이 촉진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흑백TV도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 상태에서 컬러 방송을 시작하는 것은 방송비용을 3, 4배로 증가시키고 소비성향을 자극하며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반대여론이 비등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전자제품을 관람하는 자리에서 서두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그러나 컬러 방송이 시간문제라고 판단한 업계에서는 이미 기술 도입과 생산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러한 추세하에서 1976년 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컬러 방송을 시작했다. 8월에는 KBS가 한일축구경기를 컬러로 시험방송했다. 그러나 당시의 문화공보부 장관은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해 일반적 컬러 방송을 결정한 바 없다고 발표했다.
그 후 4년이 지나 1980년 9월 국무총리로 다시 정부에 돌아오자 나는 전자산업 진흥을 위해 컬러 방송이 필수적임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건의해 승낙을 받았다. 그래서 1980년 11월 11일 이광표 문화공보부 장관이 내달부터 컬러 방송을 시작한다고 발표하게 된 것인데 정부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자면 이렇게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전화의 전자교환방식을 도입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시민들이 전화를 가설하자면 몇 달을 기다려야 했고 그것은 하나의 특혜로 간주됐다. 어느 날 김재익 계획국장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계식 교환방식을 전자교환방식으로 바꾸면 전화 적체를 일시에 해소할 수 있다고 나에게 보고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금성통신’이 생산하고 있는 EMD방식은 독일의 지멘스사로부터 도입한 것인데 이런 기계식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파키스탄과 한국뿐이라는 것이었다. ‘동양정밀’이 생산하고 있는 스트로저식 교환기는 전자식으로 전환하는 데에 비교적 용이하지만 역시 기계식이라는 것이다. 수년 전 김학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크로스바를 선정하려고 했으나 업계의 반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귀띔해 주는 실무자도 있었다.
김 국장은 나에게 전자교환기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을 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경상현 박사를 불러들였다. 경 박사는 후일에 전기통신연구원장, 정보통신부장관 등을 역임하여 이 나라 전자통신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사인데 그는 나에게 전자교환방식의 기술적 측면을 소상히 설명해 줬고 그 후부터 전자교환방식 도입에 관한 자문역할을 했다. 문제는 전자식으로 전환하자면 재래의 기계식을 폐기해야 하는데 두 업체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인지 청와대 중화학공업개발 계획에는 전자교환방식 도입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전자교환방식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전자산업의 낙후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5개년 계획사업으로 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은 잠시 침묵하더니 옆에 있는 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에게 의견을 물었다. 오 비서관은 조심스럽게 긍정적으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