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건강하세요!
스승의 날, 나는 조금 심심하고 우울하다.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드릴 스승이 내게는 단 한 분도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만났던 선생님 중 나는 단 한 분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정말이지 단 한 분의 이름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분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분들의 모습은 여전히, 바로 어젯밤에 들춰본 앨범 속 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분은 종종 내 일상 속으로 조용히 들어왔다가, 또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나 혼자 길을 걷고 있는데, 그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와 나를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은 가정선생님이었는데, 담임을 맡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선생님의 머리에는 흰 리본이 나비처럼 쓸쓸히 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팔랑팔랑 날아 햇빛 속으로 사라져버릴 듯. 그 선생님은 흰 리본을 한참 동안 머리에 꽂고 다니셨는데, 그동안은 좀처럼 웃지도 화를 내지도 않으셨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슬픔이 저렇게나 큰가, 하는 생각을 나는 그 선생님을 문득문득 바라보며 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은 국어선생님이었는데, 키가 훌쩍 크고 손가락이 유난히 기다랬다. 평소 별 재미가 없던 선생님이 어느 날, 수업을 하다 말고는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아버지 없이 어머니 밑에서만 자랐다는 고백을 5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하고 계셨다. 아버지 없이 자라, 호래자식이라는 말이 일생일대 가장 모욕적이었다는 고백을…. 그때 그 선생님의 고백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어느 날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난 국어선생님도 떠오른다. 그 선생님은 잠시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학교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수돗가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 선생님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나중에야 그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나는 친구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내가 속해 있던 문예반을 잠시 맡아 지도하셨던 선생님도 떠오른다. 늘 맑고 밝던 그 선생님이 유리온실 속에서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선생님의 남편이 뇌에 종양이 생겨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몇 달 뒤, 그 선생님의 남편은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흔이나 되었을까 말까 한 젊은 나이에. 이렇게, 선생님들을 한 분 한 분 떠올리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는 그렇게나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분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와서…. 너무도 인간적으로….
‘부디 평안하고 건강하세요!’
내 기억 속의 모든 선생님들께 나직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띄운다.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