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 누가 가장 오래 살까? 우스갯소리지만 많은 사람이 이천수(28·전남 드래곤즈)를 떠올릴지 모른다. 축구 선수 중 그만큼 ‘욕’을 먹은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행동과 돌출 발언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이천수는 올해 초 수원 삼성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겪은 뒤 우여곡절 끝에 전남으로 갔다. 하지만 그는 데뷔전인 3월 7일 심판을 향해 주먹감자를 날려 6경기 출장 정지와 사상 첫 페어플레이 기수로 나서는 징계를 받았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즐기는 것일까. 그는 26일 복귀전인 친정팀 수원과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그간의 공백을 무색하게 했다. 28일 광양 클럽하우스에게 그를 만나 그간의 얘기를 들어봤다.》
“밑바닥까지 간 축구인생
이젠 올라갈 일만 남았죠”
○ 한달반 나를 돌아보는 시간 가져
밝은 표정으로 나타난 이천수는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보였다. 마음고생 탓일까?
“3kg 정도 빠졌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경기를 뛰고 나니 마음이 편해요. 징계 받았던 사실을 사람들이 잊을 수 있도록 멋진 경기를 펼치고 싶었어요. 다행히 하늘이 저를 도왔나 봐요.”
그는 느릿느릿 말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변으로 주목을 받았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징계 기간인 48일 동안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박항서 감독은 일본에 가서 조용히 훈련하라고 했지만 기숙사 생활을 자청했다.
“페어플레이기를 들고 경기장에 나서는데 눈물이 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어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한 달 반 동안 저를 되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 모든 비난은 ‘이천수’이기 때문에
이천수는 2003년 수원 서포터스에게 부적절한 행동으로, 2006년 심판에게 욕설을 해 징계를 받았다. 그의 발언은 어떨 땐 당돌하기도 해 팬들은 ‘다리보다 입이 먼저 나간다’고 비난했다. 연예인과의 열애설도 항상 나쁜 쪽으로만 해석됐다.
“프로 선수라면 자신을 어필할 수 있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그런 마음에 제가 가끔 ‘오버’를 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팬들의 입에서 ‘개천수’ ‘입천수’라는 말이 나올 땐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운동장에서 뛰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그는 속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비난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입 좀 그만 다물라고 팬들이 얘기해요. 그래서 자제를 하면 거만하다는 얘기가 나와요. 도대체 어디다 중심을 두고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얘기만 해도 다음 날이면 ‘꼭 골을 넣겠다’ 식으로 제 말이 부풀려져요.”
○ 부모님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그는 팬들이 오해할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단초를 제공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강조했다.
“가끔 저에 대해 안 좋은 기사들이 나갈 때 부모님이 보시고 얼마나 힘들어하실지 생각해요. 저를 욕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까지 함께 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현재 자신의 축구 인생을 밑바닥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넌 밑바닥까지 내려왔다고 얘기할 때 솔직히 기분 나빴어요. 하지만 밑바닥의 밑이 더는 없잖아요. 이제 치고 올라갈 일만 남은 거죠. 지금의 밑바닥까지 갔던 기억을 항상 간직해 더욱 열심히 하고 싶어요.”
○ 실력으로 증명하고 싶어
한때 그와 함께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주목받았던 고종수(31)가 최근 은퇴했다. 고종수의 은퇴가 그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종수 형과 친한 사이예요. 은퇴를 선언한 종수 형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나와 같은 길을 걷지 마라. 남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해라’라고 얘기해줬어요. 그 말 듣고 정말 느낀 것이 많았어요.”
이천수는 이제 전남 선수로서 자신을 믿어준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운동장에서만큼은 ‘이천수가 투지와 정신력이 가장 강한 선수였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광양=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유럽진출 영광과 좌절
두번의 실패는 성격탓… 한번 더 가고싶어
“해외 진출 실패는 다 제 성격 탓이에요.”
이천수는 2003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 입단했다. 한국인으로는 첫 스페인 진출. 당시 전문가들은 그의 실력이면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7년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했지만 또 1년 만에 돌아왔다. 그는 실패 원인을 ‘자신의 성격’ 탓이라고 말했다.
“내성적이고 외로움을 많이 타요. 이런 말 하면 또 거짓말이라고 할지 몰라요. 일대일로는 얘기를 잘 못하는 편이죠.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선 선수, 감독과 제대로 얘기도 못하고 숨어버렸어요. 팀 동료들이 저에게 말을 거는 게 두려워 밥 먹다 화장실에 간 적도 있었어요.”
20대 초반의 나이에 선택한 해외 진출인 만큼 마음고생도 심했다.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 언론과 팬들이 그만 한국 망신시키고 오라며 욕을 했어요. 당시 함께 있던 어머니를 안고 서러워 같이 펑펑 울었어요. 왜 괜히 해외로 가서 욕을 먹는지 속상했어요.”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는 여전히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활약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는 영국에 가고 싶죠. 정 실력이 안 된다면 인정하고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해야죠.”
광양=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