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50대 동양 여성이 의자에 올라가 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왼쪽 허벅지를 드러냈다. 그 순간 기자회견장은 충격에 빠졌다. 그는 2002년 남편이 굶어죽은 뒤 자식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기 위해 탈북한 방미선 씨였다. 광산 선전대 배우로 한때는 늘씬했을 다리에서 끔찍한 고문의 흔적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첫 탈북 때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에 강제 송환된 적이 있다는 그는 “수용소에서 축구장을 100바퀴나 뛰고 매를 너무 많이 맞아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고 말했다.
▷방 씨가 탈북여성들이 북한과 중국에서 겪는 인권유린의 참상을 증언하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방 씨는 중국에서 인신매매단에 팔려가 몇 차례나 강제결혼을 했다. 2004년 다시 탈북해 한국에 온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북한 여성들이 짐승처럼 팔려 다니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가 알아야 한다”면서 “국제사회가 소리쳐 달라”고 호소했다.
▷탈북여성들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단에 의해 노예처럼 팔려 다니고 성노예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북에 강제 송환돼 수용소에서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탈북자도 흔하다. 유엔 회원국인 중국은 난민(難民)협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탈북자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강제송환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한다. 우리 정부도 중국 정부가 탈북자 강제송환 정책을 바꾸도록 얼마나 요구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수많은 탈북여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국경을 넘었으나 인신매매단의 제물이 됐다. 이런 지옥상의 가장 큰 책임은 김정일 집단에 있다. 북한 인권문제에 입도 벙긋하지 않는 남한 내 친북좌파들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미 상원에서 “북한은 스스로 더욱더 깊은 무덤을 파고 있다”며 “어떠한 경제적 지원도 할 뜻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정일 집단은 핵과 미사일로 ‘앵벌이 체제’를 유지하려 하지만 이래서는 주민뿐 아니라 체제마저 살아남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