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공인이라는 한자급수 시험을 보러 갔다. 1급이라는 꽤 높은 급수 시험장에도 어린아이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꼬마아이는 많아 봐야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였다. 네 귀퉁이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책을 손에 쥐고 방글방글 웃으며 앞에 앉은 할아버지와 함께 어제 외운 글자를 되새기는 모습이었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옆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계속돼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조금 전에 봤던 아이가 감독관의 눈을 피해 할아버지의 답안지를 보는 게 아닌가. 1명뿐인 감독관은 수험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기 위해 고사장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의자를 왼쪽으로 빼놓고 앉아 손자가 보기 편하도록 답안지를 오른쪽으로 밀어놓았다.
감독관의 신분증 검사는 끝나지 않았고 아이의 부정행위도 계속됐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아이에게 한마디했다. “그만해, 하지 마!” 나름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속삭였던 까닭에 아이도, 할아버지도 움찔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가 감독관의 신분증 검사가 끝난 시점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됐을 법한 어린아이가 부정행위의 의미를 알고는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에게 도둑질을 가르친 셈이다. 그렇게 취득한 합격증이 떳떳할까?
백황옥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