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

입력 | 2009-05-03 12:55:00


제18장 나이트메어와 춤을

잠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라는 주장은 절반만 진실이다. 어디서 누구와 자느냐에 따라 그 잠은 명약도 되고 맹독도 된다.

석범은 모처럼 불협화음 하나 없이 숙면을 취했다. 아바타 컨설턴트 달마동자가 머리맡에서 떠돌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무리 친한 척 굴어도 달마동자는 일상의 감시자다. 석범의 현재 몸과 마음 상태는 트집 한 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다.

집에도 창문마다 블라인드를 친 걸까.

눈을 떴지만 깜깜하다. 이 정도 잤으면 해가 높이 떠오르고도 남을 시간이다. 악몽은?

풍광 하나가 가물거린다. 처음엔 오싹한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끝은…… 기억의 투망에 걸리지 않는다. 이 달 들어 이어진 악몽들을 곱씹어본다. 견딜 수 없이 처참한 지경에서, 그는 이것이 정녕 꿈이기를 바라며 깨곤 했다. 천 길 절벽에서 횡으로 뻗은 나뭇가지에 새끼손가락 하나만 묶여 흔들리는 그를 향해 말벌들이 떼로 덤빈 월요일, 그 새끼손가락을 잘라 먹을 때마다 더 긴 손가락이 솟아나서 결국 싸리비처럼 손가락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깔린 화요일, 잘라둔 새끼손가락들을 푹 삶아 그 물을 마신 후 온 몸에서 손가락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몸부림친 수요일이여! 목요일이여! 금요일이여! 그런데 오늘은 새끼손가락이 멀쩡하다, 단 한 번도 잘라먹지 않은 것처럼. ‘수면뇌파 조절기’ 덕분일까. 정말 인위적으로 악몽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일까.

음악소리가 경쾌했다.

눈을 비비며 침대를 빠져나와 사뿐사뿐 고양이 걸음을 옮겼다. 건넌 방문을 반만 열었다.

“흡!”

석범은 혀끝까지 밀려나온 감탄사를 겨우 삼켰다. 다리가 여섯인 곤충 로봇들이 방안을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야구 모자를 거꾸로 쓴 민선은 껑충껑충 뛰면서 그들을 피했다.

“아, 깼어요. 이리이리 들어와요.”

민선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다가 석범을 발견하고 손짓했다.

“민선 씨! 지금 뭣하는 겁니까?”

“악몽 예방 게임을 즐기는 중이에요. 으샤!”

“악몽 예방 게임이라고요?”

“기존의 악몽억제장치들은 수면 중 꿈을 꾸는 동안 뇌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악몽을 억제해왔죠. '수면 뇌파 조절기'가 대표적인 경웁니다. 지금 나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즐거운 기억을 주입하고, 공포를 표상하는 편도체(아미그달라)의 활동을 가볍게 억제시켜줌으로써 악몽을 예방하는 장치를 만드는 중이에요. 뇌파 작곡시스템을 응용하여 편도체 활동을 억제하는 '포박스'(binaural acoustic composing system (BACS) using 4 -7Hz)! 곧 특허출원 예정입니다. 징기스 포에버가…… 아, 이 녀석들 이름이죠, 곤충 로봇들의 움직임에 따라 자동으로 작곡이 되는 시스템이에요. 녀석들은 인간의 발목을 향해 돌진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죠. 이렇게, 이렇게 지상에서 20센티미터만 발을 떼면 녀석들은 인지를 못한답니다. 자, 어서 이리 와보세요.”

석범이 그녀 곁으로 종종종종 들어갔다. 민선이 야구 모자를 건넸다.

"쓰세요. 뇌파를 잘 잡아줘서 멋진 음악을 만든답니다."

음악이 더욱 빨라졌다. 부산하게 다니던 곤충 로봇 하나가 그의 발목을 힘껏 들이받았다.

"아야!"

그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불협화음이 생겼다.

"징기스 포에버 이마에 쿠션을 충분히 댔지만, 맞으면 아프답니다. 피하세요, 어서 피해요, 이렇게!"

석범은 민선을 따라 두 발을 번갈아 떼며 껑충껑충 뛰었다. 30초 만에 땀이 흐르고 숨이 가빠왔다. 그는 달려드는 육족 로봇들의 공격을 피하느라 자신이 만든 선율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10분이 한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게임을 마친 후 시원한 냉수 한 잔과 함께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어때요 기분?"

"상쾌합니다, 너무너무!"

"나이트메어를 억제하고 또 예방까지 했으니 치료비를 내야죠?"

"치료비라고요?"

"윽,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흘렀네. 서둘러요. 대충 고양이세수만 하고 나와요. 3분 26초! 25초!"

민선은 서둘러 그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뭣 때문에 이럽니까? 뜬금없이 카운트다운은 왜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