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한국 해군의 도움으로 해적의 추격에서 벗어난 다박솔호의 북한 선원들이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제공 합동참모본부
“여기는 DPRK(북한) 다박솔, 해적에 쫓기고 있다. 구조를 바란다.”
4일 오전 11시 40분(한국 시간) 예멘의 아덴 항 남쪽 해상에서 해적 퇴치와 선박 호송 임무를 수행하던 청해부대의 4500t급 한국형 구축함인 문무대왕함에 긴박한 영어 무선 호출이 날아들었다. 인근 해상을 지나던 북한선적 화물선인 다박솔(DABAKSOL·6399t)호가 해적선에 습격당할 위기에 처하자 국제상선공통망으로 구조를 요청해 온 것이다.
국제상선공통망은 인근 해상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이 청취할 수 있지만 때마침 문무대왕함이 가장 먼저 포착했다. 철강재를 싣고 이집트에서 홍해를 지나 인도로 향하던 다박솔호는 문무대왕함에서 96km 떨어져 있었다. 문무대왕함은 다박솔호와 무선교신을 통해 현지 상황을 파악한 뒤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이다. 즉시 출동할 테니 전속력으로 해적의 추격을 최대한 따돌려라”라고 알리고 구조작전에 돌입했다.
11시 50분, 문무대왕함은 연합해군사령부에 해적 출현을 통보하고 K-6 중기관총 등으로 무장한 특등저격수 2명을 태운 링스 대잠헬기를 급파했다. 링스헬기가 최대 속도(시속 230여 km)로 비행해 30분 뒤인 낮 12시 20분경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해적선은 다박솔호에서 불과 3km 떨어진 지점까지 따라붙어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북한 상선은 AK-47소총 등으로 무장한 해적들에게 납치될 뻔한 상황이었다.
사거리 20km의 시스쿠아 공대함미사일을 장착한 링스헬기는 즉각 다박솔호에 접근하는 해적선을 향해 위협비행을 실시했다.
링스헬기 현장 급파 10분만에 해적 격퇴
링스헬기는 오후 1시 30분 문무대왕함에 복귀하기까지 1시간 40분간의 작전으로 북한 상선을 완벽히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문무대왕함은 해적에 쫓기느라 항로를 이탈했던 다박솔호와 다음과 같이 3차례에 걸쳐 교신을 하며 정상 항로를 안내하기도 했다.
▽청해부대=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귀선에서 안심이 되시면 희망하는 침로로 변침하셔도 되겠습니다.
▽북한 선박=네, 감사합니다. 우리 70도로 변침하겠습니다. 항로 기간 중 계속 좀 (교신을) 유지합시다.
▽청해=현재 11번에서 귀선이 안전할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대한민국 해군을 찾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북 선박=예, 알겠습니다.
▽청해=다박솔은 120도, 120도 침로로 IRTC(국제권고통항로)로 안전하게 진입하시기 바랍니다.
▽북 선박=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120도인데, 120도로 그냥 올라갑니까?
▽청해=귀선의 안전을 위해서 130도를 권고합니다.
▽북 선박=감사합니다. 그냥 우리 더 보호하겠습니까?
▽청해=네, 귀선의 안전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북 선박=감사합니다. 좀 잘 지켜주십시오.
유엔해양법에 따르면 피랍 위기에 처한 선박은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지원하게 돼 있다. 이날 청해부대의 작전은 한국이 북한 상선을 해적에게서 보호해준 첫 사례로 기록됐다.
한편 피습 위기에 처했던 북한 선박 명칭인 다박솔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5년 1월 1일 현지 시찰한 인민군 포병중대의 명칭(다박솔 초소)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다박솔 현지 시찰을 ‘선군정치’의 출발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