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서울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 대표인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지방변호사회
서울 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2273명에 月 10만원씩
절망 딛고 웃음 찾은 아이들 “다음엔 우리도 꼭 도울래요”
미란이(가명·13)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새엄마에게 매를 맞을 때마다 집 근처 교회에 숨어서 잠들곤 했다. 배가 고파 잠이 깨면 동네 가게에서 빵이나 우유를 얻어먹었다. 하루는 새엄마를 피해 뛰쳐나왔지만 교회 문이 닫혀 길거리를 떠돌다 경찰서까지 가게 됐다.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은 지역의 한 사회복지사에게 미란이를 맡겼다. 사회복지사는 곧바로 서울변호사회가 주관하는 소년소녀가장돕기 캠페인에 미란이를 추천했고, 그 덕분에 매달 10만 원씩 후원을 받게 됐다.
이후 미란이의 삶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병원 치료도 받고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미란이는 최근 서울변호사회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변호사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도 사보고 다시 웃게 됐어요. 국어 선생님이 돼서 꼭 보답할게요”라고 적혀 있었다.
미란이처럼 서울변호사회의 후원을 받고 있는 130여 명의 학생들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서울변호사회 소년소녀가장돕기 10주년 기념식’에 모였다. 이들은 감사의 글을 모아 서울변호사회에 전달했고, 기념식 후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들과 경기 용인 에버랜드 놀이동산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처음 에버랜드를 찾은 현민이(가명·12)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손을 꼭 붙들고 종일 곳곳을 쏘다녔다. 장난기가 가득한 현민이는 이날 “보내주신 장학금으로 게임을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문제집을 샀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많은 사람들 도울게요”라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말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시작된 이 캠페인은 10년 동안 2273명의 학생을 도왔다. 후원금만 총 29억5610만 원에 달한다. 10년간 한결같이 이어진 후원은 이제 열매를 맺고 있다.
고교 3년 동안 매달 10만 원씩 후원을 받은 임진석 씨(가명·20)는 지난해 서울의 한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임 씨는 10여 년 전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어머니마저 알코올에 의존하면서 소년가장으로 여동생을 돌봐야 했다. 매달 70만 원 안팎의 기초생활보장급여로는 세 식구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했다. 유일한 ‘과외’인 EBS 강의도 인터넷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끊어야 했지만 서울변호사회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놓았던 책을 다시 잡게 됐다.
임 씨의 원래 꿈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하지만 고교 시절 진로를 바꿔 법대에 진학했다. 그는 “변호사님의 작은 관심이 꿈을 잃었던 나에겐 아버지처럼 큰 힘이 됐다”며 “변호사가 돼서 받은 것만큼 갚으며 살겠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