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CJ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말레이시아 출신 엘리 나디아 씨와 지난해 9월 입사한 인도인 마얀크 모한 씨, 중국인 리웨이란 씨(왼쪽부터). 이들은 모두 CJ그룹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CJ GFP’ 인턴십 프로그램 출신이다. 변영욱 기자
“외국인 유학생 인턴십으로 ‘엄친딸’ 됐어요”
韓流 반해 무작정 한국행
‘글로벌 인턴제’로 취업성공
일정기간 근무후 본국 파견
“한국문화 장점 현지서 활용”
“세계적 경기 침체로 말레이시아도 취업이 쉽지 않다더군요. 유학 생활 내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한국에서 당당히 취업하고 나니 오랜만에 효녀가 된 기분입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 서로 다른 피부색의 외국인 대학생 70여 명이 갈색 히잡을 머리에 두른 말레이시아 여성의 프레젠테이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해 CJ의 외국인 유학생 대상 인턴십 프로그램 ‘CJ GFP’를 거쳐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엘리 나디아 씨(25)가 외국인 후배들에게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는 중이었다.
그는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며 “외국인 유학생이라고 해서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며 “아무리 불황이라지만 주눅 들지 말고 한국 기업에도 적극적으로 도전장을 내길 바란다”고 권했다.
○ 외국인 유학생에겐 꿈을 펼칠 기회
말레이시아 국비 장학생이었던 나디아 씨는 2003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우 배용준 씨에게 반해서다. 고려대에서 화학생명공학을 전공한 그는 올해 3월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CJ 본사에서 만난 그는 “정말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한국 회사들은 말레이시아 기업들에 비해 연봉도 3배 이상 더 많다”고 말했다. 나디아 씨는 “‘유학은 영어권으로 가는 것이 좋다’며 한국행을 말리던 말레이시아 친구들이 지금은 모두 나를 부러워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철없던 한국 문화 마니아에서 ‘엄친딸(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엄마 친구 딸)’이 되기까지는 CJ그룹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었다.
CJ GFP(Global Friendship Program)에는 두 단계가 있다. 1단계는 CJ그룹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CJ GNS(Global Networks Program)’이고, 2단계는 관심 있는 사업 분야에서 직접 일해 볼 수 있는 ‘CJ GI(Global Internship)’이다. GNS 참가자들은 매주 토요일 6회에 걸쳐 CJ제일제당, CJ오쇼핑, CJ푸드빌 등 각 사업장을 방문해 사업 내용과 해외 진출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빵을 만들어보는 등 현장 체험을 한다. 이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면 CJ그룹 안에서 관심이 가는 사업 분야와 직무를 골라 방학기간 중 6주간 매일 출근해 근무해 볼 수 있는 GI 참가 기회가 주어진다. 반기별로 연간 2회 운영되는 GFP에는 지난해 160명이 참가했고 40명은 GI 과정까지 밟았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3월까지 나디아 씨를 포함해 총 10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CJ 입사에 성공했다.
3회라는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GFP가 외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데에는 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CJ미디어 전략기획팀에서 근무 해온 중국인 리웨이란 씨(28)는 “다른 한국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인턴 경험을 해봤지만 대부분 취업과 연결되는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외국인 대상 홍보 차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러나 CJ GFP는 홍보와 채용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말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해외에서 취업하길 바라듯 한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들 중에는 한국에서 일하길 꿈꾸며 오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랬기 때문에 CJ GFP의 슬로건인 ‘당신의 꿈을 나누세요(Share your Dream)’처럼 진짜 제 꿈이 이뤄진 느낌입니다.”
○ CJ엔 글로벌 인재 선점의 기회
CJ는 매번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마다 12주라는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지만 그래도 CJ로선 남는 게 많다. 한국인 임직원에게 외국인 동료와 어울려 일하는 글로벌 마인드를 길러주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해외 프로젝트에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CJ는 GFP 출신 인력들을 일정 기간 국내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한 뒤 본국 또는 같은 문화권에 있는 해외 CJ 지사로 파견 보낼 예정이다.
CJ GFP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 전략팀에서 근무 중인 인도인 마얀크 모한(26) 씨는 조만간 CJ가 인도에 세울 제약 관련 연구개발(R&D) 법인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는 “한국 회사에서 7개월간 일하다 보니 전혀 못 마시던 술도 이제는 제법 하게 됐다”며 “한국 회식 문화를 통해 배운 팀원들 간 응집력을 인도 현지에 가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바이오전략팀에서 근무하는 나디아 씨도 CJ가 인도네시아에 짓고 있는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내년 6월이면 자카르타로 옮겨 근무하게 된다.
CJ그룹 이성욱 인사팀 부장은 “현지에서 직접 채용하는 것보다 한국 문화는 물론 CJ만의 조직 문화를 잘 아는 GFP 출신 인력을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며 “올해부터는 GFP 프로그램 규모를 더 확대해 해외 인재 선점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